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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이슈]왜 공간혁신인가?

함께 가는 인디프로젝트

 

 

 

최근 들어 미래학교라는 말이 부쩍 늘었다. 급변하는 미래사회에 대응하고 미래를 선도하는 학생을 키우는 곳이 미래학교다. 공간혁신은 감시학교, 통제학교미래학교로 바꾸는 필수 과정이다.

돈과 권력을 가진 교육부미래학교의 철학을 담은, 이미 혁신이 완료된 학교공간을 기성품처럼 제공할 수도 있다. 지금보다는 나을 것이다. 하지만 그 학교에서는 미래혁신도 가능하지 않다. 학교의 주체인 교사와 학생이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인디프로젝트의 주인공은 학생과 교사

공간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조건이지 주체가 아니다. 학교의 주체는 학생과 교사다. 미래학교 공간혁신의 주체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주인공이다라는 선언과 흐름은 이미 시작됐다. 인디(InDe)프로젝트! 혁신(Innovation)과 파괴(Destruction)의 필요성 앞에서 머뭇거리지 않는 교사와 학생들의 실천이 인디프로젝트이다. 학생과 교사는 스스로 교육목표와 수단, 방법의 변화를 만들고 이에 맞는 학교공간을 창조한다. 지난 118일 인디프로젝트의 정신과 내용을 담은 인디선언이 공표됐다. 교육부도 지원에 나섰다.

 

공간혁신은 교육혁신 그 이상

공간혁신은 교육혁신의 수단이지만 결코 하나의 방법에 머무르지 않는다. 왜 그럴까?

첫째는, 그동안 혁신교육, 행복교육, 마을교육 등 다양한 교육혁신을 시도해왔다. 지금도 진화 중이다. 그런데 참여자들은 자주 허전함을 토로한다. 구체적 실체와 연결되지 않은 프로그램 중심의 교육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간혁신이 결합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손에 잡히는 실체가 있다. 그 실체와 교육의 주체들이 부단히 상호작용을 한다. 그렇게 찾아온 변화는 프로그램이 끝나도 강한 흔적을 남긴다. 새로운 공간의 경험은 미래로,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둘째는, 적잖은 돈이 들고 수많은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공간혁신은 권력행위’, ‘책임행위의 과정이다. 소비와 수용에서 결정과 집행으로 주체의 위치가 바뀐다. 단순 소비자에서 능동적 생산자로 바뀌면서 다름 아닌 시민이 탄생한다. 또한 공간혁신은 정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다. 주체들의 전망과 의지를 이끌어 내는 퍼포먼스다. 교과서 대신 창과 벽, 천장과 텅 빈 공간으로 눈을 돌리는 전혀 다른 행동을 요구받는다. 지금까지는 눈길을 주지 않았던 곳을 응시함으로써 상상력과 창조의 경험을 갖는다.

첫째와 둘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교사와 학생은 그냥 프로그램을 돌리는 것보다 더 힘이 든다. 하지만 그래서 더 보람 있고 값지다. 무엇보다 하루의 절반 가까이를 보내는 공간의 창조자로서 라는 존재를 무겁고 귀하게 확인하게 된다. 교육의 시민적 주체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시민적 주체가 튼튼하게 서면 미래학교는 어렵지 않다.

교육부는 이런 창조자들의 가능성을 보았다. 때문에 증개축 등 학교단위 공간혁신을 뒷받침하고 인디워크숍을 작동시키고 있다. 여기에 미래학교의 접목을 주문하고 있다. 물론 디지털 공간이라는 새로운 기술적 과제들도 포함되어 있다.

 

미래교육은 하나 됨과 다양성의 조화

무엇을 할 것인가가 명확하면 선택도 쉬워진다. 공간혁신의 방향이 분명하면 거기에 접목시킬 미래학교의 기술을 선택하는 일도 어렵지 않다. 방향이 애매하면 기술은 그저 신기한 구경거리일 뿐이다. 그것은 교육이 아니다. 미래학교의 핵심 주제 중 하나는 학습과 기술의 결합이다.

그러나 기술이 본질은 아니다. 면허가 없고, 윤리적 기준이 허약하면 드론기술이 공동체를 파괴하는 재앙이 될 수 있는 이치와 같다. 시민적 주체의 튼튼한 확립 차원에서 공간혁신을 설명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술의 가능성을 사실상 언급하지 않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마크 프렌스키(Marc Prensky)미래교육을 설계한다에서 옛 격문을 인용한다. “본질에는 일치(一致), 비본질에는 다양성(多樣性), 그리고 모든 것에는 넉넉한 사랑을.”

학교교육에서 본질은 시민적 주체의 확립이다. 비본질은 방법이고 기술이다. 이 모든 것을 조화시키는 힘은 학생과 교사에 대한 존중과 믿음, 넉넉한 사랑이다.

그러니까 이해할 수 없으면 외워라가 아니다. ‘사랑하라이다. 자기 삶을 결정하는 주권자인 시민의 탄생을 바란다면, 그들이 지금 만들고자 하는 내일의 삶을 존중한다면, ‘감시와 통제는 더 이상 덕목(德目)이 아니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에 필요한 덕목은 공간혁신에 호응하는 생각의 혁신이다. 그 출발은 넉넉한 사랑일 수밖에 없다.

 

·사진 김태은 교육부 정책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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