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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경남역사

[아하! 경남역사]가야유산 기획❶ 가야인, 대한해협을 건너다


가야
, 철의 왕국을 넘어 해상왕국으로

고대 가야국이라고 하면 흔히 철의 왕국을 떠올린다. 이는 중국의 삼국지-위서 동이전에 근거한 것이다. 가야의 전신인 변한에서는 철이 생산돼 한, , , 낙랑, 대방 등에 공급했고 철을 화폐처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1990년대 김해 대성동, 함안 말이산 고분군 등 주요 가야유적에서 철을 추출해 만든 덩이쇠(鐵鋌)와 각종 무기, 갑옷 등 풍부한 철기 유물들이 무더기로 발견되면서 철의 왕국 이미지는 더욱 굳어졌다.

그러나 근래 발굴조사로 밝혀지는 가야는 단순히 철을 생산, 공급한 산지에 머무르지 않았다. 남해안이라는 지리적 장점을 이용해 고대 중국, 북방, 일본 등과의 문화 교류를 주도한 해상왕국(海上王國)’으로서 새롭게 평가받고 있다. 한창 진행 중인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추진에서도 가야문화의 세계사적 가치로 해양과 대륙을 연결하는 지정학적 위치에서 국제 교류를 통해 동아시아 사회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주요 특징으로 들고 있다.

 

창원 현동에서 가야의 해양문화를 발견하다

최근 경남 창원의 한 유적에서 가야의 해양문화를 입증할 중요한 유물이 나왔다. 마산합포구 현동에서 600기가 넘는 대규모 가야고분군이 확인됐다.(발굴기간: 2017. 6~2018. 12 예정) 이 일대는 1989년과 2009년 두 차례의 발굴조사에서 무덤, 집자리, 제철로(製鐵爐) 등 가야시대의 다양한 유적이 분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통해 창원 덕동만과 남해안을 무대로 활약했던 아라가야의 해상세력의 존재가 밝혀졌다.

특히 이번에 발굴된 현동 387호 덧널무덤(木槨墓)에서는 가야시대 항해용 범선(帆船, 돛단배)을 본떠 만든 배모양토기가 완전한 보존 상태로 출토돼 주목을 받고 있다. 이전에도 비슷한 유물이 나왔지만 파손이 심해 정확한 형태를 알기 어려웠다. 이번의 배모양토기는 유선형의 날렵한 선체(船體)를 갖추고 있음은 물론 세부적인 구조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져 가야시대 범선의 웅장한 모습을 가늠하기에 충분하다. 국내 고대 배모양토기 중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가야인, 범선을 타고 대한해협을 건너다

대 가야의 대외교류 대상은 주로 일본()이었다. 가야의 철과 토기 생산기술이 바닷길을 통해 전해졌으며, 바람개비모양청동기(巴形銅器), 청동거울, 벽옥제석제품, 야광조개 등을 가야로 들여왔다. 고대 일본 역시 삼국지의 기록으로 보아 30여 개의 작은 나라였고, 그 중심은 현재의 큐슈 북부지역과 오사카 일원의 키나이지역이었다.

가야시대의 해상이동은 대부분 해안을 따라 이동하는 연안 항해였으며, 가야와 일본의 항해로는 남해 연안(금관가야: 고김해만, 아라가야: 덕동만·진동만, 소가야: 고성만) 대마도 북부큐슈 시모노세키해협 세토나이해 오사카만을 잇는 바닷길이었다. 이 중 남해안으로부터 대마도, 다시 북부큐슈까지 200에 이르는 대한해협의 횡단은 가야 사람들에게는 목숨을 건 항해였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고난도의 조타술(操舵術)과 함께 거친 파도를 견뎌낼 수 있는 튼튼한 항해용 선박이 필수였다.

 

창원 현동 유적에서 발견된 배모양토기는 바로 가야 사람들의 조선술(造船術)로 만든 가야의 배를 형상화한 유물이다. 그동안 가야의 배는 기록이나 그림으로 전해지지 않아 그 모습을 전혀 알 수 없었다. 가야가 역사의 기억에서 사라진 지 1400년이 훨씬 지난 지금, 30남짓 크기의 배모양토기를 통해 웅장한 가야 범선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상상해 보라. 철이며 토기며 선진문물을 가득 실은 큰 범선을 타고 대한해협의 거친 파도를 헤쳐 나가는 가야 사람들의 모습을.

글 김수환 경남도 가야사연구복원추진단 학예연구사 사진 ()삼한문화재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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