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지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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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장군의 호국정신이 서려있는 역사의 현장 속으로 여행을 떠나자!
  • 임진왜란 관련 행사나 승첩지 등 여러분의 역사의 현장체험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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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민사

  • 지정번호 사적 제381 호
  • 주소 전라남도 여수시 덕충동 1808외 
  • 전화번호
  • 홈페이지 여수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충민사는 마래산(385.2m)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데, 선조 34년(1601) 체찰사 이항복(1556~1618)이 왕명을 받아 임진왜란이 끝난 뒤의 민심을 살펴본 후 통제사 이시언에게 명하여 건립한 것이다. 충민사를 세우자 우부승지 김상용이 임금께 이 사우의 이름을 지어달라고 간청하여 선조가 직접 이름을 짓고 그것을 새긴 현판을 받음으로써 이충무공과 관련된 최초의 사당이 되었는데, 함께 충무공을 기리는 통영의 충열사보다는 62년, 숙종 30년(1704)에 세워진 아산의 현충사보다는 103년 전의 일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여러 사람들 가운데 가장 먼저 제사를 모시는 분으로 하고 의민공 이덕기, 충현공 안홍국이 좌우로 배향(配享 : 주벽을 먼저 지내고 배향은 나중에 제사를 지냄)되었다. 그 후 숙종 35년 충민공 이봉상을 신묘로 모시고 석천제를 창설하였으며 영조 8년(1732)에 사우를 중수하였다. 고종 5년(1868)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충민단만 남기고 모두 철거 되었으나 고종 10년(1873) 지역 유림들의 진정으로 건물을 다시 세우고 판서 윤용술이 쓴 충민사 현판을 걸었다. 1919년에 일제에 의해 강제 철거된 후, 1947년 2칸 집으로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지역 주민의 노력으로 다시 세워 1993년 6월 1일 국가 사적 제 381호로 지정되었다. 의민공 이억기는 전라우도수군절도사로서 임진·정유재란시 이순신, 원균 두 장군을 도와 분전하다가 거제도에서 전사하였으며, 안흥국은 임란시 보성군수로서 정유재란때 원균을 도와 싸우다가 안골포에서 전사하여 숙종조에 추배되었다. 한편 이봉상은 충무공 이순신의 5대손으로 훈련대장 충청병사로 있을 때 (1728) 이인좌의 난으로 억울한 죽음을 당하였다. 사우의 건물 크기를 보면 정면 3칸, 측면 2칸, 팔작지붕으로 기단은 3단의 장대석으로 짜고 3군데의 계단을 통해 오르게 되었다. 주초는 원형이고 그 위로 민흘림의 둥근기둥을 세웠는데, 기둥 위로는 포작 없이 보아지와 쇠서, 창방이 결구되었고 장여와 도리가 연결되었는데 그 사이로 화반을 끼워 넣었다. 처마는 겹처마이며 활주가 설치되지 않았으며 부연이 있다. 창호는 중앙어간이 사분합이며 양일칸은 삼분합으로 모두 띠살문이다. 이 건물은 1978년 정화사업을 실시하고 주변을 정리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충민사 하마비 충민사 입구에 높이 1.4m, 너비 42㎝, 두께 10㎝ 크기의 작은 비가 하나 서 있는데 '하마비(下馬碑)'라 쓰여져 있다. 주로 궁궐, 종묘, 문묘, 성현의 탄생지나 묘 앞에 세워 경의를 표하게 한 하마비가 이곳에 있다는 것은 충민사가 그만큼 중요한 곳임을 나타낸 것이다. 이 비는 원래 동산동 벅수에서 충민사 쪽으로 약 100m 쯤 떨어진 곳에 세워져 있었으나 우회 도로가 만들어지면서 이곳으로 옮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