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의 150년 된 고택, 학이재로 가는 길은 항상 설렌다. 앞으로는 남강, 주위는 묵곡 생태공원으로 둘러싸여 있어 전경도 훌륭하고 무엇보다 고고한 기풍과 아직도 살아 숨 쉬는 것 같은 선비의 자태까지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고맙게도 학이재에서는 매년 작은 행사가 열리는데 올해가 벌써 여덟 번째다. 코로나로 한동안 쉬었기에 더욱 반갑다. 작지만 내실 있고 탄탄한 학이재 문화행사는 유럽 여러 작은 마을에 연례적으로 열리는 작은 축제와 닮았다. 지역 축제하면 으레 관(官)이 주도하는 행사가 대부분이지만, 이 축제는 지역민이 모여 자발적으로 여는 마을 행사라 의미가 있다.
어릴 때 이곳에서 나고 자란 이현숙 대표는 국내외 알려진 유명한 조각가다. 젊은 시절 프랑스로 유학 갔을 때 ‘뒤종’이란 작은 마을에서 해마다 마을 축제가 열리는 것을 보고 언젠가 자기 고향에서도 꼭 이런 축제를 열겠다고 다짐했단다. 결혼하고 자식들 키우느라 잊고 지냈던 꿈을 오십에 이룬 거다. 농부가 되기로 하고 누구의 도움도 없이 라벤더를 키웠다. 키운 라벤더를 팔아 행사 자금을 모았었는데 이제는 입소문이 나 지인과 지자체 등의 도움을 받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오랫동안 고민해서 만든 축제답게 학이재 행사 콘텐츠는 꽤 다채롭다. 핸드메이드 컬렉션이란 표제로 죽공예를 비롯한 가죽공예, 도자공예, 자갈 그림, 학이재에서 손수 만든 비누, 스킨 토너, 라벤더 워터 등 먹거리와 볼거리가 풍성했다. 게다가 작은 마을 축제에서 보기 어려운 유명인들의 강연과 국악, 클래식 등 전통과 현대의 하모니가 어우러진 깊이 있는 공연도 매회 이어진다.
초여름 햇살을 받으며 행사장에 온 많은 관광객은 학이재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인 라벤더처럼 밝고 화사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야외에 마련한 예쁜 식탁에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람들, 학이재 본채와 전시장을 둘러보느라 여념이 없는 방문객들도 모두 자신만의 방식으로 축제를 즐겼다. 멀리 서울에서 학이재 행사가 다시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아침 일찍 서둘러 왔다는 한 여성은 학이재의 고풍스러운 분위기에 취해 연신 감탄을 쏟아냈고, 인근 도시에 거주한다는 어떤 중년 남성은 전국 여러 행사장에 다녀봤지만, 이토록 작고 독특한 문화행사는 처음이라며 엄지를 치켜들 정도로 반응이 훈훈했다. 단지 코로나 사태로 쉬는 김에 이곳을 리모델링하느라 라벤더를 늦게 심어 아직 꽃이 피지 않은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학이재는 성철 스님의 생가(겁외사)와 그리 멀지 않다. 세상살이의 먼지와 허상을 털
어내고 싶다면 언제든 찾아와도 된다. 윤슬이 넘치는 남강과 묵곡 생태공원에서 부는 도드라진 바람, 학이재가 담고 있는 고즈넉함에 마음이 넉넉해질 것이다.
이인규 명예기자(산청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