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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

[행복한 여행]시간이 머문 고택의 아름다움 함양 개평마을 ‘일두고택’


 

임인년 새해 첫 여행지로 수백 년의 역사와 선조들의 생활상이 담긴 고택으로 행선지를 정했다. 경남의 가장 대표적인 양반 고택으로 알려진 함양군 지곡면 개평마을 일두고택에서 찬찬히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져보자.

백지혜 사진·동영상 김정민 

 


1984
년 국민속문화재로 지정

개평마을엔 전통 한옥이 60여 채나 된다. 마을 어귀에서부터 고운 담장 길이 이어지고, 고즈넉한 기운이 감돈다. 마을의 중심에 있는 일두고택은 대지 3000, 12개 동의 건물로 19세기에 개축된 사랑채를 제외하곤 대부분 건물이 16~17세기에 건축됐다. 1984년에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돼, 조선 시대 양반 가옥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자리매김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족히 80m는 돼 보이는 박석길이다. 걷기엔 불편하지만 비가 와도 미끄러지지 않고, 태양 빛의 눈부심도 막아준다는 조선시대 전통 포장길이다. 골목길은 막다른 듯하지만 반대편으론 뚫려있다. 대문을 골목 양 입구에서 보이지 않게 세운 것은 저잣거리에 나앉지 않는다라는 옛 선비들의 꼿꼿함이 깃들어 있다.

고택 입구 앞 솟을대문에는 홍살문에 충신 효자의 정려패 5점이 걸려 있다. 취재에 동행한 구혜령 함양군 문화관광 해설사는 조선시대 사회제도의 일면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본보기인 정려가 5점이나 걸리기는 쉽지 않다라고 했다. 그만큼 일두 정여창 선생 가문이 보기 드문 선비 집안이라는 뜻이다. 오래된 대문 하나에도 기품과 엄숙함이 느껴진다.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졌다.

 

일두 정여창 선생의 선비정신 고스란히 담긴 건물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 선생은 동국 18이자 조선 5’(정여창·김굉필·조광조·이언적·이황)으로 불릴 만큼 성리학에서 이름난 유학자다.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제자이며 백성이 주인이 되는 왕도정치를 실현한 실천유학자였다. 일두(一蠹)한 마리 좀벌레란 뜻으로 정여창 선생이 직접 지은 호다. 중국 송나라 정자(정이천)농부가 피땀 흘리며 온갖 곡식을 농사지으니 내가 그것을 먹고, 여러 기술자가 물건들을 만들어서 내가 그것을 사용하며, 군사들이 나라를 지켜주니 내가 편안히 지낸다. 나는 그저 세월만 보내고 있으니 천지간에 한 마리 좀벌레와 같다(천지간일두·天地間一蠹)’라고 말한 글에서 뜻을 취했다고 한다. 자신을 낮추는 자세는 어떻게 가능한 걸까. 그간 작은 기쁨에도 호들갑을 떨었던 게 부끄러워졌다.

  

일두고택의 상징 사랑채와 탁청재

솟을대문을 지나 모습을 드러낸 사랑채1987KBS 드라마 <토지><미스터 션샤인> 등의 촬영지로 잘 알려져 있다. 정여창 선생이 타계하고 330여 년이 지난 1843년경에야 후손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사랑채 툇마루 벽에는 忠孝節義(충효절의)’가 적힌 글씨가 보인다.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인간관계의 절개와 의리를 지키는 것. 이 글을 보며 매일 다짐했을 선조들의 삶을 떠올리니 그저 감탄스러울 따름이다.

세속의 혼탁한 마음을 깨끗이 한다탁청재에서 문밖을 내다보면 아담한 정원이 보인다. 정원 안에는 돌로 가짜로 만든 산, ‘석가산이 있는데, 자연과의 합일을 갈망하고 장생불사를 원했던 옛 선비들이 자연을 집안으로 불러들인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마당을 비추는 태양 볕이 반사돼 툇마루를 비춘다. 겨울 해가 가장 오래 놀다 간다는 툇마루에 앉아있는데 한겨울임에도 전혀 춥지 않았다.

    
여성과 서민
, 자연을 배려한 공간

고택은 양반가의 유산인 만큼 전통적 유교 사상이 반영돼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남녀유별, 장유유서의 가부장적 권위 속에서도 서민과 여성을 배려한 요소들이 눈길을 끈다. 사랑채를 뒤로하고 안채로 들어서려면 움푹 팬 모양의 문지방을 넘어야 하는데, 이는 긴 치맛자락을 들고 지나야 하는 여인들을 배려하기 위함이다. 안채 한쪽에 흙담을 두른 여자 전용 뒷간(화장실)을 둔 것도 마찬가지다. , ‘일두고택의 굴뚝은 한결같이 낮게 설치돼 있는데, 이는 연기가 집 밖으로 나가지 않게 함으로써 먹거리가 귀한 시절 일반 서민들의 헛헛한 마음을 헤아렸기 때문이다.

안채의 툇보(앞 퇴칸 들보)도 고스란히 전통미를 보여준다. 구 해설사는 방문객들께 툇보 선을 유심히 보시라고 해설합니다. 살펴보면 5개 툇보의 선모양이 각각 달라요. 그런데 그게 전혀 눈에 거슬리지 않고 조화를 이루고 있잖아요. 자연적으로 구부러진 나무 모양을 그대로 살려 공간을 확보하려는 감각! 너무 재치 있는 지혜로움 아닌가요?”라고 말했다.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연처럼 사는 것이 소원이었던 옛 선조들의 기본적인 마음가짐이 엿보인다.

 

고택 여행의 백미는 아늑함과 편안함

사랑채 누마루에 다시 올라 본다. 처음 보는 아름다운 풍경에 온전히 마음을 뺏긴 채 한참을 그렇게 머물렀다. 아늑하고 편안하다. 이곳에서 하룻밤을 지새운다면, 그날 밤 나는 잊고 있었던 또 다른 나와 마주하며 아주 오래 깨어 있을 것만 같다.

고택을 즐기는 방법은 간단하다. 일부러 무얼 하려 하지 말 것. 시간이 켜켜이 쌓인 고택 구석구석을 둘러보다 다리가 아프면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풍경 소리도 듣고 절절 끓는 아랫목에서 지난 추억을 돌이키면 된다. 주인장에게 듣는 고택에 얽힌 이야기를 듣다 보면 울퉁불퉁한 서까래, 까맣게 그을린 아궁이마저 특별하게 느껴질 것이다.

 

함양 일두고택

위치  함양군 지곡면 개평길 50-13 

문의  010-6395-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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