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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경남역사

[아하! 경남역사] 진주남강 유등축제의 유래는?



해마다 가을이면 진주 남강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진주남강유등축제. 7만 개의 유등이 불을 밝히면 황홀한 세상이 펼쳐진다. 문득 진주에서는 왜 유등을 테마로 축제를 개최한 걸까 궁금해진다. 재단법인 진주문화예술재단의 석장호(53) 기획실장에게 진주남강유등축제의 유래에 대해 물었다. 

배해귀 사진 김정민

 

 

남강의 아름다운 빛 진주남강유등축제


가을이 물들기 시작하는 10, 진주는 온통 유등이다. 축제 기간이 되면 진주교와 천수교 사이 남강에는 다채로운 유등이 형형색색의 빛을 뽐낸다. 짙은 어둠에 둘러싸인 밝은 불빛이 마치 하늘의 별을 옮겨 놓은 듯한 느낌이다.

진주남강유등축제는 지난 1949년 개천예술제에서 시작됐습니다. 당시는 영남예술제라 불렸고, 1955년 영남예술제 6회 때 처음으로 유등대회라는 행사가 열렸죠.”

진주남강유등축제를 총괄하고 있는 석 실장은 약 65년 전부터 남강에 유등을 띄우는 행사가 진행됐다고 덧붙였다. 이후 개천예술제를 준비하던 이들이 1996~1998년 사이 개천예술제를 성공시키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선진 축제 탐방도 다녀오고, 전문인들을 모셔 토론회도 열었지요. 그리하여 개천예술제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유등을 특화해 유등축제를 만들자는 결론이 났습니다.”

이후 개천예술제 행사의 일환으로 추진되어온 유등놀이가 200010월 대규모 유등축제로 발전됐다.

    

 

임진왜란 때 진주를 밝혔던 유등

그럼 진주에서는 왜 유등으로 축제를 하는 걸까라는 궁금증이 생긴다. 왜 진주성 앞 남강에서 유등을 밝히며, 그 기간도 10월일까? 그 답은 지금으로부터 429년 전 임진왜란에 있다. “159210,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진주성 전투때 였어요. 당시 진주성은 강을 건너지 않으면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고, 왜군이 진주성으로 들어오려 했죠. 이에 진주성에 있던 조선군들이 성 밖의 의병 등 지원군과 연락하기 위해 풍등을 날리거나 남강에 유등을 띄워 군사 신호를 보냈습니다.”

또 조선군이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는 통신수단의 역할도 함께 했다. 그것이 진주남강유등축제의 시초가 됐다. “진주대첩 이듬해인 15936월에 진주성은 10만 왜군에 점령당했어요. 현재까지 진주 사람들은 이 일을 계사순의로 기리고 있으며, 당시 순절한 7만의 민··군의 충혼을 기리기 위해 유등을 띄웠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처럼 진주성 전투에서 군사 신호로 사용되던 유등을 후세에 이르러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순국선열의 넋을 기리기 위해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올해 유등축제는 12월에 개최

2021년 진주남강유등축제는 오는 124일부터 31일까지 개최된다. “해마다 10이면 진주에는 태풍이 왔는데. 그걸 피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11월이면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마쳐 축제가 열리는 12월이면 집단 면역이 형성될 거라는 기대도 있답니다

무엇보다 연말을 맞이하여 유등이 희망의 빛으로 2022년 새해맞이를 해보려고 합니다.” 

2011~20133년 연속 대한민국 대표축제로 선정되고, 2011년 세계축제협회가 주관하는 피너클어워드에서 금상 3, 동상 1개를 수상하기도 한 진주남강유등축제. 

이제 명품 축제로 세계 3대 축제 반열에 오르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밝힌 석 실장 포부가 이뤄지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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