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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반하다

[사람에 반하다]“소원이라고 할 기 뭐 있습니꺼 자식들 다 잘 되는 기 소원이지예”

함안 97세 오두심 할머니

건강 100세 시대, 이번엔 할머니를 물색했다.

길을 걸을 때 부축하는 것도 마다할 정도로 또박또박 걷는 어르신, 내다 팔 농산물과 해산물이 있으면

꼬박꼬박 에도 다니신다는 오두심(97·함안군 군북면 원북길) 할머니다.

   글 박정희 사진 김정민 

  

시력, 청력, 기억력 양호한 97세 어르신

아이고 뭐 특별히 얘기할 게 있다꼬 이리 찾아오셨으꼬. 그래도 와 주시서 고맙십니더.” 대문을 열고 들어섰더니 정중히 맞아주신다. 대개의 어르신이 자신보다 나이 어린 사람과 대화할 때 반말부터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지 않아 인상적이었다. 젊은 날 고생의 흔적으로 등은 굽었으나 건강 상태는 좋아보였다. 돋보기 써도 잘 안 보이는 구슬을 맨 눈으로 꿸 정도로 시력이 좋고, 말도 조곤조곤하게 하셨다. 언성 높일 필요 없이 청력이 양호하다는 의미다.

더 놀라운 건 기억력이었다. 할머니의 형제는 물론 할머니 자녀, 손주에 대한 기억과 자칫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될 뻔했던 경험담까지 생생하게 들려줬다. 여항면 출신인 할머니는 1925년생, 호적엔 1926년 생으로 올라있다. 형제는 25. 남자 형제 둘은 작고했고, 자매는 할머니를 비롯해 4명이 살아있다고 했다. 할머니 자녀는 53녀인데, 아들 셋을 먼저 보냈다. 둘은 6·25 전후, 또 한 명의 아들은 58세의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다.

 

인생이 바뀔 뻔했던 아찔한 기억

“17살에 10살 많은 남편(조성규)과 결혼했습니더. 혼인하고 남편은 북만주로 바로 돈 벌러 떠났지예. 18살 되고 위안부 훈련을 받았습니더. 지금도 그때 훈련받은 구호를 기억합니더.”

조용태(66) 씨가 옆에서 부연설명을 해준다. 서울에서 경찰공무원을 하다가 은퇴 후 낙향해 5년째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아들이다. “어머니께서 당시 훈련받으면서 익힌 일본 말 구호를 들려주시곤 하는데, 아마도 앞으로가’ ‘좌향좌같은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고 했다. ‘를 면할 수 있었던 건 큰 시숙이 남편에게 보낸 편지 덕분이었다. “(위안부로 끌려갈 듯하니) 까딱하면 니 사람 못되게 생겼다고 적힌 편지를 받아든 남편은 곧장 고향으로 향했다

하지만 고향으로 왔다가 설상가상 강제징용 대상자가 돼버려 꼼짝없이 잡혀갈 판이었다

다행히 기지를 발휘해 방비가 허술한 틈을 타 도망쳐 할머니와 만주로 갔다고 한다. 인생이 바뀔 뻔했던 순간이었다.

그때가 해방 2년 전인 1943년이다. 할머니는 헤이룽장성(흑룡강성) 용강성(19458월 만주 해체 시 소멸) 농장에서 서울·경기·경상도 사람들과 농사짓고 살다가, 해방되고 남편 고향인 함안군 원북리에 돌아왔다. 살림은 궁핍했고 할머니는 돈 되는 일은 뭐든 해야 했다. 농사일은 물론 가마니 짜기, 밥집도 했다. 덕분에 동네에선 내로라할 정도의 부를 일구고 자식들 공부를 시켰다고 했다.

 

여생 동안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움직일 것

할머니는 오랜 세월 마산역 번개시장을 토요일마다 오고 갔다. 지금은 겨울이라 드문드문 가지만 배추든 무든 한두 가지라도 팔 거리가 있으면 장으로 향한다. 오가는 길은 번거롭다. 아들이 가끔 태워주기도 하지만, 택시 타고 기차 타고 갈 때가 더 많다. “집에서 군북역까지 택시비가 7000원 이고예, 기차비가 1800원 입니더. 왕복하면 2만 원 정도 들어예. 보통 장에 가면 5~6만 원 정도 벌고 오니까 남는 거는 별로 없습니더. 그래도 장에 가는 기 좋아예. 하하.” 셈도 잘 하신다.

함안군에서 도시락을 배달해 주니 밥걱정은 없다. 근거리 사는 딸들도 반찬을 챙겨 주지만 그래도 아들과 먹는 아침은 할머니가 차리신단다. 고령의 어르신들이 달고 사는 약도 없다. 혈압약이 전부다. 집안사람들이 질병이 없는 편이란다. 타고난 복이다 싶다. “동갑계가 있었는데 다 가고 나만 남았다 아입니꺼. 소원이 뭐냐고예? 아이고 이 나이에 무슨. 그래도 소원이라면 우쨋등가 자식들 다 잘되는 거지예. 자식들은 힘들다꼬 장에 가지마라 하지만 가만 있으모 안됩니더.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움직이는기 좋아예.”

사진을 찍으려하자 아들은 혹여라도 연세 때문에 어머니가 초라해 보일까걱정스러워한다. 그러자 할머니가 한복으로 갈아입고 나오신다. 파마 값 아껴 장만했다는 금비녀도 다시 꽂고 살짝 미소를 지으신다. 97세 할머니가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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