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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산업과 전경점심시간 후 노곤한 틈을 타 전략산업과를 찾았습니다. 한참 졸음이 올 시간이지만 사무실 내 사람들은 분주합니다. ‘전략’이라는 단어는 ‘전쟁을 전반적으로 이끌어 가는 방법’이라는 뜻처럼 군사 성격이 짙습니다. 도대체 산업을 어떻게 전략하기에 이러한 전투적인 부서명으로 불리는지, 과연 이름처럼 전투적인 부서인지 알아보았습니다.전략산업과는 경남도 미래 먹거리를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항공 우주산업·로봇산업 등을 육성하는 미래지향적인 곳이었습니다. 전략산업과에는 과학진흥담당·지식기계담당·항공산업당당·조선해양담당·IT 바이오 담당 등 5개 담당이 있습니다.▲류명현 과장◇전략산업과 류명현 과장 = “앗, 저도 인터뷰합니까?”라는 말과 함께 검토 서류 한 뭉치를 들고 자리에 앉습니다. 10분 후 회의라는 바쁜 상황에서도 서글서글한 인상을 하고 열정적으로 대답하시는 류명현 과장을 만났습니다.- 전략산업과에서는 어떤 사업을 중점적으로 하고 있습니까?“전략산업과는 경남도 미래를 책임지는 곳입니다. 우리 과에서는 다양한 사업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크게 봤을 때는 항공 산업단지를 조성 육성하고, 그 중 진주 항공국가산업단지에 역점을 두어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해양플랜트 산업도 육성하고 있고요.”- 도청에서 얼마나 근무했습니까?“저는 만 5년을 도청에서 일했습니다. 그동안 투자유치과, 녹색산림과, 기획실 등 여러 부서에 근무하며 경험을 많이 쌓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 비해 산업분야를 많이 알게 되었는데, 다양한 부서 경험이 지금 전략산업과에서 일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항공산업·조선산업 등 내용을 알아야 일을 할 수 있어, 일도 어렵고 처음 보는 사람들은 낯선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일에 전문성이 크다 보니 그만큼 보람도 있습니다.” - 일하면서 어려운 점은 무엇입니까?“예산 때문에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예산 확보를 해야 중소기업 지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산 확보가 우리 부서 과제이기도 하고요. “▲류명현 과장-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무엇입니까?“경남도는 해양플랜트 분야 관련 전국 최고입니다. 더 크게 발전하고자 전략산업과 예산을 조금 더 책정했으면 합니다. 우리는 미래에 투자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역할은 지역 세대 간 균형발전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지역 균형발전·동서 산업 균형발전을 넘어, 추후 세대 간 자원분배도 될 것입니다.”▲재해식 사무관◇IT 바이오 담당 제해석 사무관 = IT·바이오 담당에서는 바이오산업 지원 육성, 인력·기술 양성 등에 관한 일을 하는 곳입니다. “말주변이 없는데, 전문가도 아니고···”라는 첫 말을 하지만 도청에서 20년 남짓 근무한 제해석 사무관을 만났습니다. - IT 바이오 담당, 무엇을 하는 곳입니까?“원래 담당이 IT와 바이오 따로 있었지만 2011년 1월에 합쳐졌습니다. 게다가 인원이 줄어 두 개 담당 일을 적은 인원이 하고 있습니다. 바쁘고, 일이 많은 편입니다. 간혹 일찍 퇴근하고 평소 야근을 많이 합니다. 김해 음식물 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나아가 의학바이오산업을 육성하고 있고요. 바이오산업 자체가 단시간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최소 4~5년 후에 성과가 나옵니다. 그렇게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어도 상품화가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상품화가 안 되면 문제도 많이 생깁니다. 그런 바이오산업 특성을 이해하고 상품을 연구하는 담당 노고도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추진하고 있는 사업은 무엇 입니까?“첨단 의생명 테크노타운을 준공했고, 하동녹차연구소, 남해마늘연구소도 준공 했습니다 이로써 2078명 인력양성과, 784건 기업지원 효과를 냈습니다. 계속해서 바이오 고부가가치 산업화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김태연 사무관◇지식 기계 담당 김태연 사무관 = 연신 전화기를 놓지 않고 서류를 보고 있습니다. 바쁜 와중에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준 김태연 사무관입니다. - 지식기계 담당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전략사업부 자체가 다들 비슷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항공·IT 분야를 제외한 다수를 지식 기계 담당에서 하고 있었습니다. 지식 기계, 기업 지원, 연구개발, 산업융합, 연구개발 특구 등을 하고 있습니다. 밀양 나노분야 등 중소기업에 자체인력을 위탁해 주기도 합니다.”- 일하면서 어려운 부분은 무엇입니까?“우리 부서는 중소기업에게 TP, 정밀기계센터 업무를 지원 하고 있습니다. 우리 장비를 이용해 중소기업체계를 잡아주는 역할도 하고 있고요. R&D 분야는 국비가 많이 듭니다. 물론 도비 부담도 됩니다. 도 재정 여건이 어려운데, 예산확보가 되지 않으면 기업도 지원해줄 수 없습니다. 그 부분이 가장 안타깝고, 힘이 듭니다.”- 다른 부서와 차별화된 부분은 무엇입니까?“부서마다 성격이 다르고, 어떤 분야든 고유한 특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타부서와 다른 점을 꼽자면, 우리부터는 이어지는 산업을 한다는 것입니다. 오랜 기업 기술지원, 공장 자립해 나가 고맙다는 인사를 받는 일도 있습니다. 그럴 때 보람을 많이 느낍니다.”▲곽영준 사무관◇항공산업담당 곽영준 = 땀을 뻘뻘 흘리는 기자 모습을 보고 음료를 건넵니다. 쉬다 하라며 인자하게 웃는 곽영준 사무관입니다.- 항공산업담당에서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말 그대로 비행 관련 산업을 하고 있습니다. 도비로 중소기업을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비행산업은 국외수출이 부진합니다. 중소기업이 국외수출을 할 수 있도록 관련 인력을 알선하고자 교육·산업단지 조성·마케팅·수출지원단 산하에 공수해 교육하고 있습니다. 항공산업은 대부분 외수 산업입니다. 한국시장보다는 국외시장으로 눈을 돌려야 합니다. 수출지원단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싱가포르·중국·프랑스·영국 등 큰 회사를 찾아다니며 우리 산업을 알리기도 하고, 우리 제품을 사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일하면서 보람을 느낀 적은 언제입니까?“이 부서에 온 지는 1년 정도 됐습니다. ‘센코’라는 중소기업이 있는데 이번에 미국 보잉사에 2300만 달러 계약을 했습니다. 그 계약을 하기까지 함께 미국에 건너가기도 하고, 수출 계약서도 함께 쓰는 등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 기회로 상공산업이 발달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무엇입니까?“우리나라 조선 자동차는 세계 5위입니다. 그 중 항공산업은 16위입니다. 여기서 경남도 항공산업은 전국 매출액 중 86%를 차지합니다. 다르게 말하면, 경남도 항공산업이 높아지면 대한민국 항공 산업 전체가 높아집니다. 그만큼 자부심도 큽니다. 항공산업 세계 7위권에 드는 것이 목표입니다.”▲서영수 사무관◇조선해양 담당 서영수 사무관 = 오후 2시, 유난히 햇빛이 많이 비치는 창가에 앉아, 의도치 않게 따가운 5월 햇살을 내리받고 있는 서영수 사무관을 만났습니다.- 조선해양담당은 무엇을 하는 곳입니까?“세계 10대 조선소 중 삼성, 대우, STX, 성동 4대 조선소가 경남에 있습니다. 우리는 주로 해양 조선 기자재 산업을 육성하고 해양 플랜트·바다 자원 채취 등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국제보트쇼도 열어 기자재·국외구매자들이 플랜트 기자재를 구매했습니다. 우리가 해양 플랜트 시장을 형성한 것입니다. 당장 보트 몇 대를 파는 것보다 팔 수 있는 조선 해양 레저산업 관련 시장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하면서 힘든 점은 무엇입니까?“ 유럽발 금융위기 등 여러 상황이 맞물려 조선해양 경기가 전체적으로 좋지 않습니다. 조선 시장이 침체되었습니다. 우리는 조선 해양을 투자하고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 흐름에 많이 좌우됩니다. 가라앉은 조선해양 경기침체를 타파하고자 국제보트 쇼를 열어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는 등 노력하고 있습니다.” - 중소기업에 지원해 주던데, 지원 참여 방법은 어떻게 됩니까?“R&D 사업에 참여하고, 연구개발 단계를 거쳐 중소기업 지원을 받습니다. 대기업 아니고서야 국내 중소기업은 국외로 나가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국내에 해양플랜트 시장을 열고자 11월 국제 산업전도 열 예정입니다. 이 전시를 통해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이 국외 구매자를 만날 수 있습니다. 도에서 하는 사업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흔히 하는 말로, 몰라서 못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많이 알려져 많은 도민이 참여했으면 합니다.”▲윤주각 사무관◇과학진흥담당 윤주각 사무관 = 사무실 제일 끝 편에서 바쁘게 얘기 중이신 윤주각 사무관은 인터뷰 소리에 재빨리 오셨습니다.- 과학진흥담당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원천과학기술 진흥업무 등을 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이 모든 산업의 기초입니다. 하지만 과학기술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경남도 과학 R&D를 전국으로 따진다면 5% 정도입니다. 이것을 발전시키고 진흥시켜야 나아가 경남산업까지 발전할 수 있습니다.”- 진행 중인 사업은 무엇입니까?“경남도와 여러 지자체가 모여 기초과학 연구센터를 유치할 계획입니다. 이것뿐 아니라 과학영재센터, 도내 기업, 중앙기관 유치 등에 힘쓴다면 경남도 과학산업 빠르게 진화할 것입니다. 기계 자동차 부품 등 기초가 탄탄해야 성장할 토대가 마련됩니다. 그래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외부연구단도 도내 대학과 함께 협력해 추진하고 있습니다.- 일하면서 어려운 점은 무엇입니까?“과학 자체가 수도권에 밀집되어 있어 경남 과학 인프라가 약합니다. 국공립 연구기관도 대전에 몰려있습니다. 그리고 우수 과학 인재가 수도권으로 많이 가는데, 그 이유는 카이스트· 포항공대처럼 특성화된 과학 대학이 경남에 없기 때문입니다. 경남도에는 공장이 많습니다. 그래서 조선과 중공업 기지입니다. 이렇게 좋은 여건 속에도 인재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안타깝습니다. 한국과학기술원과 과학전문대학을 경남에 유치하면 경남 과학산업이 조금 더 발전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2.05.24.▲공보관실 집무 모습 5월,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가 로 새롭게 돌아왔습니다. 개편 후 조금 더 도민과 가까워지고자 여러 가지 새로운 코너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도청 이모저모, 도청 공무원이 사는 이야기를 알리는 것도 여러 기획 가운데 하나입니다.그 첫 순서로 ‘공보관실’을 인터뷰했습니다. 공보관실은 도청 홍보를 담당하고 있어 알고 보면 도민과 가까운 기관 중 하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번 경남이야기 개편과 앞으로 운영을 담당할 부서이기도 하고요.언론 종사자나 관심 있는 분 아니고서는 ‘공보관실’에 대해 잘 모르실 텐데요. 주위를 관심 있게 보면 경남도보, 도청 이벤트 등 공보관실 손을 거친 결과물을 종종 보실 수 있습니다. 다른 부서보다 도민과 친밀도가 높아야 하는데요. 부서 특성 때문에 도민과 직접 접촉할 기회는 드문 부서이기도 합니다.▲차신희 공보관공보관실은 도청 본관 2층 공보관실은 복도 제일 끝 방에 있습니다. 문을 들어서자 20명 남짓 분주한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공보관실에는 홍보기획, 공보행정, 뉴미디어, 보도지원 총 4개 담당이 있는데요. 공보관실 총 책임자인 공보관을 비롯해 4개 과 각 담당자를 만났습니다.◇차신희 공보관 = 경상남도 공보관실 총 책임자인 차신희 공보관입니다. 인터뷰하러 들어갈 때도 분주하게 다른 업무를 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차신희 공보관은 김두관 경남도지사를 비롯해 경남 도정 전체를 도민에게 알리는 중요한 업무를 총괄합니다. 특히 대부분 언론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김두관 경남도지사와 경남 도정이 자칫 왜곡돼 도민에게 전달되는 일이 없어야 하기 때문에 공보관은 늘 예민할 수밖에 없지요.차신희 공보관은 “공보관실은 경남 도정과 도민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부서”라며 “항상 경남도민에게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온 힘을 기울이겠다”고 말했습니다.▲정정원 주무관.◇공보행정 담당 정정원 주무관 = ‘따라라라라란’ 경쾌한 음악 소리가 들리시나요? 점심시간 즈음 도청 내 음악 방송이 흘러나옵니다. 공보행정 담당 분들이 손수 음악 방송을 하는 거죠.“사진 안 찍으면 안 되나요?” 쑥스럽다며 얼굴부터 가리는 공보행정 담당 정정원 주무관입니다.- 공보행정 담당에는 몇 명이 일하고 있나요?“8명이 함께 일하고 있어요. 공보관실 기준으로 직원이 많은 편인데, 이들과 함께 30분에서 1시간 내외로 도청 내 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역 신문 발전 사업, 도보 공보 청 내 행사와 회의실 행사 등을 맡고 있어요.”- 많은 일을 하고 있군요. 그 중 도청 내 추천하고 싶은 사업이 있나요?“본관 1층 민원실 앞 열린 도민 쉼터를 만들고 있어요. 도청에 도민들이 행정업무를 보러 종종 오세요. 그런데 업무처리 하는 시간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죠. 지루하게 기다리기보다는 열린 도민 쉼터에서 여러 콘텐츠를 보고 편의를 봤으면 좋겠단 취지로 만들게 됐어요. 40평 정도 되는 공간에 홍보영상물 기업 소개, 도정 정책 만족도 등 콘텐츠가 많이 있습니다. 다 둘러볼 때 10분 정도 걸리고요.”- 공무원은 ‘칼퇴근’이란 이미지가 강한데, 정말 그런가요?“전혀 그렇지 않아요. 터무니없는 소리죠. 제 경우 9시 정도에 퇴근합니다. 특히 국제적 행사가 있을 때는 눈 코 뜰 새 없이 바빠요. 각 부서 성격에 맞게 시기별로 바쁜 시기가 있습니다.”▲조웅제 사무관◇홍보기획담당 조웅제 사무관 = 홍보기획 담당은 신문 스크랩과 방송을 통해 도청 직원에게 볼거리, 읽을거리를 전해주는 곳입니다. 매일 아침 직원들과 대면하는 부서기도 하죠. 홍보기획 담당 조웅제 사무관을 만났습니다. -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도정을 알리기 위해 기획 홍보자료 만들고 언론보도사항도 모니터링합니다. 또 도정 광고를 총괄하고 있지요. 도청에서 일하는 1500여 명이 출근 후 가장 처음 하는 게 우리가 만든 신문을 스크랩, 방송 기사를 보는 겁니다. 인기 있는 만큼 보람도 큽니다.”- 업무 중 개인적으로 ‘더’ 신경 쓰는 부분 무엇인가요“아시겠지만, 일반적으로 보도기사는 딱딱합니다. 딱딱하게 다가가기보다는 친근하게 다가가고자 기사 자체를 최대한 부드럽게 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도민들은 이런 정보를 궁금해하지 않을까? 항상 생각하고, 원하는 정보를 전달하고자 고민하고 있습니다.”- 도민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도민이 뭘 원하는지 항상 생각하고 있습니다. 도정에 대해 많은 관심 부탁하며 기대해 주십시오”▲김상원 사무관◇뉴미디어담당 김상원 사무관 = 뉴미디어담당은 도민과 직접적인 소통을 합니다. 바로 온라인을 활용해서 말이죠. 김상원 사무관을 만났습니다.- 뉴미디어 담당, 뭐하는 곳입니까“도정 홍보를 하는 곳입니다. 홍보방법에는 오프라인과 온라인 두 가지가 있는데, 우리는 온라인을 중점적으로 하죠. 기존 오프라인은 도민들에게 전달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면 SNS 등 온라인은 실시간으로 가능하므로 이점이 많습니다.”- 근무 중 힘든 점은 없었나요“인터넷 홍보 담당에서 작년부터 뉴미디어 담당으로 바뀌었습니다. 일 자체도 광범위해졌고, SNS 도입사례도 없는 등 중앙부처 체계가 잡혀있지 않아 힘들었죠. 지금은 어느 정도 체계가 잡혀 괜찮습니다.”- 일할 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요소는 무엇인가요“예전에는 UCC, 기사, 영상 등을 활용해 도민과 소통방식이 일방적이었습니다. 지금은 카툰, 디자인 공모 등 다양한 운영시스템을 구축해 쌍방향 소통을 이루고 있죠. 아직까진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애정 어린 시선으로 봐 주십시오.”▲정현준 주무관◇뉴미디어 - 경상남도 감성뉴스 '경남이야기' 정현준 주무관 = 이번 개편에 가장 수고하신 분이죠. 뉴미디어 담당 경남이야기 감성뉴스 정현준 주무관을 만났습니다.- 무슨 일을 하고 있나요“를 총괄하고 명예기자 관리도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명예기자 위촉식도 했죠.”- 이번에 홈페이지를 개편한 걸로 아는데, 개편 후 달라진 점이 무엇인가요“친근함을 강조하고자 고민했고, 그 결과 로 명칭을 바꾸게 됐습니다. 이전 는 도정 정보를 신속 전달해 딱딱한 느낌이 컸는데요. 도청 내부에서는 만족할지 모르나 도민은 다가가기 어려운 감이 있었습니다. 로 개편 후 기사 성격이 딱딱한 느낌보다는 조금 더 부드러운 느낌으로 가는 게 이전보다 가장 큰 차이죠.”- 개편 후 고민사항이 있나요“도민이 기사를 보고 단순히 ‘공무원 내부 이야기로 받아들이진 않을까’, ‘너무 가볍게 보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어요. 하지만 도정 정책을 알고 있으면 분명 도민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홈페이지에서 재밌게 놀다갔으면 좋겠어요. 쉽게 놀러 와 구경할 수 있는 창구를 많이 만들었습니다. 방문자 10만을 이루는 그날까지 열심히 하겠습니다.”▲정연광 주무관◇뉴미디어 - 경남이야기 인터넷 방송, 정연광 주무관 = 도청 엘리베이터를 타면 왼쪽 위에 작은 모니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모니터 안에서 경상남도 크고 작은 소식이 나오죠. 뉴미디어 담당 정연광 주무관을 만났습니다.-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도청 내 인터넷방송을 하고 있어요. 이 방송은 2006년 11월 개국했습니다. 오래된 만큼 우리 담당이 도청 내 중요한 부분을 기록하는 성격도 가지고 있죠. 물론 지사님 주요행사를 동영상으로 남기기도 합니다. 다른 방송과 차별점이 있다면 쉽고 재미있다는 것이죠. 다소 딱딱할 수 있는 도 주요행사나 보도, 도정 뉴스와 관광지 등 재미있게 만들어 영상으로 이해하기 쉽게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도민 참여율이 많은 편인가요“한 달에 한 번 퀴즈 이벤트를 하는데 2000명에서 많게는 4000여 명이 참석합니다. 방송이다 보니 어렵게 시나리오를 쓰기보다는 도민이 이해하기 쉽게 쓰고 있는데 그 때문인지 방문자들이 꾸준히 오는 것 같아요.”- 도민에게 하고 싶은 말 있나요“많이 찾아오시고 많은 관심 바랍니다. 경남이 우리 대한민국 번영 1번지가 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했으면 합니다.”▲장대원 주무관◇뉴미디어 - 경남이야기 대표 블로그, 장대원 주무관 = 인터뷰 시작하고 얼마 후 블로그 부문 대상을 받았다고 자랑부터 하는 장대원 주무관을 만났습니다. -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요“하루에 3000명에서 4000명 정도 블로그에 접속합니다. 블로그를 더욱 활성화 시키고자 일주일에 15개 정도 별도 기획을 올리고 있죠. 딱딱한 뉴스보다는 경남 숨은 여행지, 축제 등 흥미 있는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다른 블로그와 차이점은 무엇인가요“더 나은 콘텐츠를 싣고자 전문기자, 파워 블로거 등이 명예기자로 위촉돼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도민이 아니더라도 경남도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볼 수 있게 경남 구석구석을 취재해 도민들과 가깝게 소통하고 있죠.”- 도민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2011년 블로그 부문 대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네이버 오픈캐스트에 우리 블로그 글이 올라가죠. 네이버에서 검색만 하지 마시고 오픈캐스트도 봐주십시오.”▲조선남 주무관◇보도 지원 담당 조선남 주무관 = 보도 지원 담당은 사무실이 따로 있었습니다. 다른 담당보다 기자와 대면이 많은 조선남 주무관을 만났습니다.-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언론사 인터뷰, 지사 일정, 사진 등 대부분 기자 지원하는 일을 합니다.”- 근무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나요?“공무원 된 지 20년, 이 부서에 온 지는 1년 3개월 됐습니다. 사람마다 다른데 저는 순환체제로 2년마다 부서 배치를 받죠. 처음 보도 지원 담당에 배치받았을 때 당황스러웠어요. 의정 부분은 아예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덕분에 의정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어요. 또 지사님 일정도 생각해야 했고, 기자 동향 파악도 해야 했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부분을 신경 쓰는 게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해를 채워 갈수록 도청 내 아는 사람이 많아져요. 그래서 이제는 업무보단 인간적인 부분에서 조심스러워요. 나 뿐 아니라 다들 그럴 것으로 생각해요. 2년 체제라 9개월 남았습니다. 남은 동안 지금 하는 일을 잘 수행 하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12.05.17.이길종 도의원(통합진보당·거제1)이 모는 지프 뒷좌석에는 각종 문서 자료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그를 만나던 날에도 이 의원은 차 뒷문을 올려놓고 자료 분류에 여념이 없었다."아직 사무실이 없습니다. 특별당비 내야죠, 창원까지 왕복 기름 값이 100만 원가량 들죠, 생활비도 보태야죠. 사무실까지 사용하면 수천만 원 적자가 불 보듯 뻔합니다. 여력이 없습니다."이 의원은 지난해 4월 보궐선거에서 당선됐고 "도의원이 된 후 쉬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지역 현안을 알면 알수록 해야 할 일은 끊임이 없었기 때문이다."받는 돈을 월급으로 따지면 400만 원이 안되는데, 활동비가 없습니다. 아니 월급 안 받아도 좋은데 같이 일할 보좌관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현 제도는 재산 있고 사업하는 사람들만 지방 의정활동 하라는 식입니다. 도의원 한 사람이라도 일을 잘하면 경남도 예산 수백억 원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부정을 저지르면 단호하게 처벌해야 합니다. 지방의원들에게 투자하는 게 아까운 게 아니라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마땅히 일할 데가 없어서 PC방에 가서 문서 작성하고 출력하는 일까지 있습니다. 말이 안 되죠."이길종 의원은 당선된 후 거제와 창원을 오가며 많은 일을 벌였다.이 의원이 경남도의회에서 제일 먼저 발의한 조례는 '화물자동차 지원 조례'였다. 도내에 화물자동차 주차 공간은 600여 대분에 불과하다. 하지만 등록 차량은 2만 5000대다. 이 때문에 대형 화물차들이 국도변 갓길에 주차하기 일쑤고, 각종 사고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물동량이 많은 거제에서의 문제는 더욱 심각했다. 이 의원은 지원 조례를 통해 각 시군에서 화물 자동차 주차장을 만들 때 도비 지원이 가능하도록 했다.거제 출신인 이 의원은 1981년 대우조선에 입사했다. 노동운동을 했고, 도의원 선거에 출마하기 전까지 노동자로 생활했다. 고향이자 삶의 가치관을 확립한 곳이 거제다. 거제 현안에 쏟는 열정은 대단했다.동부 채석장 허가 갈등이나 사등면 레미콘 공장 건립 논란, 그리고 청포산업단지 건립 지연 문제 등 주민들 도움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찾고 있었다. 주민 대책위와 함께 대안을 마련하고 지자체와 사업자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고 있었다. 소신 있는 발언도 아끼지 않는다."지역구 의원으로서 무조건 주민 편을 듭니다. 하지만 주민한테도 아닌 건 아니라고 합니다. 가령 사업자들에게 돈을 요구하는 경우죠. 마을 전체적으로 피해를 입으면 마을에 필요한 도로를 낸다든지 노인정을 짓는 등 공동의 이익을 위해 보상을 받아야지, 가구 별로 몇백 만 원씩 나눠 받기를 요구하는 건 옳지 않죠. 물론 확연하게 개인의 재산 피해가 드러난다면 정당하게 보상을 받아야 하는 건 당연하고요."이 의원은 거가대교 개통 후 거제∼부산 간 시내버스 운행을 제안했다. 하지만 상권 붕괴가 더욱 가속화될 수 있다는 우려에 거제시는 난색을 표했고, 시외버스 업자들의 반발도 있었다. "지역 상권은 이미 붕괴됐습니다. 하지만 거제 시민의 불편을 볼모로 상권을 활성화하겠다고 접근하는 건 안 되죠. 또한, 수조 원을 들여서 거가대교를 만들어 놓고 거제를 찾는 관광객들에게는 불편을 주는 것도 재고해야 합니다."총선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당은 다르지만 진보정당 후보가 석패했기 때문이다. 이 의원의 대답은 역시 시원시원했다. "100% 이기는 싸움이었습니다. 이기는 싸움을 진 것에 대해 평가를 분명히 해야 다음 선거에서 이깁니다. 과오가 일어나지 않도록 '거제(진보정치)'를 평가해야 합니다." 이 의원은 자신 또한 책임질 일이 있으면 기꺼이 나서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12.05.08.절뚝거리거나 한쪽 발로 껑충이며 일어서야 하는 노인이 통영 쌍새미 길 끝, 슬레이트집에 홀로 살고 있다. 축 처진 어깨를 하고 동그란 눈은 노안으로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 어색함, 어려움이 복잡하게 얽힌 눈이다. 1918년생, 94세, 잡은 손에서 약한 맥박을 느꼈다.75년 전, 열여덟 통영 소녀는 거제도 장승포 고모 집으로 간다며 강구안을 찾았다. 돛단배를 타고 강구안을 벗어나면 지척에 있는 고모집 장승포. "돈 더 벌게 해주겠다"는 소리를 듣고 장정 두 명에게 끌려 장승포행이 아닌 부산으로 가는 발동선에 태워졌다. 저항했지만 소녀는 장정을 이길 힘이 없었다. 당시 소녀는 어머니와 함께 그물 공장에 다녔다. 나중, 같은 그물 공장에 있던 조선인 '계술'이란 남자가 자신을 '업자'에게 소개했다는 것을 알았다. 열여덟, 조숙했던 통영 소녀는 고모집 장승포가 아닌, 기차를 타고 압록강을 건너야 했다. 중국 대련과 대만, 필리핀에서 소녀는 쓰러졌다. 지켜주지 못한 나라를 원망하지 않았다.이름은 김복득. 통영 태평동에서 태어났다. 나자마자 집안 살림이 불어 딸이 복덩이라며 아버지는 특별한 이름을 붙였다. 12세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소녀는 인물이 좋아 동네 총각들이 많이 따랐다. 슬쩍 손이라도 잡으려 하면 탁, 털어버렸다고 새침데기라는 뜻의 '털지'란 별명을 가진 소녀였다.소녀는 중국 대련에서, 대만과 필리핀에서 한 명이 누울 수 있는 방, 그 좁은 '판잣집'에 갇혀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군인들의 줄을, 구십 넷의 나이, 75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했다."일렬로 그렇게 줄을 서서……."고향에서 소녀는 남자와는 말 한마디, 스치는 손끝마저 부끄러워했었다. 스물 여섯까지, 그녀는 8년을 제국주의에 강간당했다. 많은 소녀가 있었고 일주일에 한 번씩 검사를 받았다. 임신한 위안부는 총살됐다.한 일본인 장교가 그녀를 사랑했고 일본에서 함께 살자고 했다. 그에게 어머니와 동생이 보고 싶다며 간청했다. 1년 뒤 그 일본 장교 덕분에 해방 직전 배를 탈 수 있었다. 탈출 당시 잠수함에 선미가 폭격당하기도 했지만, 무사히 나가사키 항에 도착, 고향을 향했다.동생은 징용 가고 없었다. 딸의 행방을 모르는 어머니는 술찌끼를 먹고 돌아오기 몇 개월 전 부종 병으로 돌아가셨다.고향은 그녀를 '잡년'으로 손가락질했다. 해방 후 위안부 삶을 접게 해준 일본군 장교가 통영으로 찾아왔지만 조선 여자가 일본으로 갈 수 없다며 그를 돌려보냈다. 미군정 당시 배급을 타 먹고살았고, 홀몸으로 한국전쟁을 겪었다.이후 지인의 소개로 결혼했지만, 아버지뻘에 본처까지 있는 사기 결혼, 둘째 아내로 살아야 했다. 결혼식도 없이 같이 살았던 남자를 그녀는 지금도 남편이 아닌 "그 남자"라고 부른다. 두 번 유산했고 이후 임신할 수 없었다. 그녀의 나이 40에 그 남자는 숨졌다. 낮에는 통영 중앙시장에서 생선을 팔았고 저녁엔 새터시장에서 다시 생선을 팔며 연명했다.1994년, 위안부 삶을 숨기고 산 지 근 50년, 정부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몸을 드러냈다. 수차에 걸친 조사와 녹취, 증언 때마다 부끄러움에 횡설수설했다. 나이가 들수록 하나 둘 더 구체적 사례를 밝혀 갔다. 하지만, 이제, 그 분노도 치매로 하나 둘 잊혀간다.2007년 9월, 증언 집회와 교류회를 위해 귀국 후 처음 일본을 찾았다. 일본은 원수란 생각뿐이었다. 그때 집회를 본 한 일본인 남자가 무릎을 꿇고 울며 용서를 빌 때 잠깐 위안이 됐다.위안부 등록 후, 정부 지원금을 받는 생활보장대상자가 됐다. 집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15만 원, 매일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구불구불한 비탈길을, 다리를 절며 쉬며 아무도 없는 곳, 집으로 스며들었다. 지난 3월 한 달, 8800원짜리 케이블TV 시청료를 내고 2만 8900원의 전기료를 냈다. 고혈압·신장약·골다공증 약이 유일한 친구가 된 듯했다."죽기 전에 일본 사과를 받아야 해, 그래야 눈을 감지…." 함께 절규했던 같은 위안부 피해자(통영 5명, 거제 2명)들이 줄줄이 떠나갔다.그녀는 "부끄럽지만…"이란 말을 종종 하면서 위안부 삶을 증언했다.삶은 무겁고 외로웠다. 수년간 통영여고 학생들이 집 안 청소도 하고 말벗이 되어줬다. 가진 걸 모두 주고 싶었다. 정부 지원금을 모은 돈, 전 재산 2000만 원을 장학금으로 통영여고에 30일 오후 3시 기부했다.태어날 때부터 흥이 많았던 그녀는 며칠 전(27일) 신명이 나 덩실덩실 춤을 췄다. 통영 열방교회,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하는 통영거제시민모임 창립 10주년 후원의 날 행사장이었다. 다 준다고 생각하니 기뻤던 모양이다."내가 글을 쓸 수 있다면, 한 많은 내 삶, 집채 덩어리만큼도 클기라…."이야기 막바지, 그날 일이 생각난 할머니가 앉은 채 방안에서 팔을 올리고 다시 덩실덩실 춤을 췄다.
12.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