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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반하다

[사람에 반하다]"수어로 생활 방역합니다"

농인(聾人)들의 생활 속 거리두기

 

 

우리 아빠 이제 안 아파요?”

지금은 조금 아파.”근데 점점 건강해지실거야.”

고맙습니다.”

내가 더, , 더 고마워.”

 

 

슬기로운 의사생활’(tvN 드라마)의 마지막 회 중 일부 대화이다. 수술을 끝낸 환자의 어린 아들(농인)과 의사(배우 조정석)의 수어 대화는 많은 감동을 선물했다. 국제수어통역사도 조정석의 수어연기를 극찬했다. “수어는 단순한 손가락 언어가 아니라, 표정과 마음까지 담아내는 종합언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줬다고 했다.

수어는 음성언어가 아니다. 음성의 몫을 몸이 감당한다. 국어사전에 나오는 단어의 20%만 개발됐다. 새로운 수어가 나올 여지가 그만큼 많다. 국제 수어까지 나왔지만, ‘소통의 언어로서 늘 아쉬움이 있다. 특히 생명을 좌우하는 의학용어의 경우 그 절실함은 더 커진다. 세상을 뒤집어 놓은 코로나 사태 속 수어에 의존하는 장애인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들의 생활 속 거리 두기가 궁금하다.

 

농인 확진자 제로의 속사정

지난 7월 초 함안군수어통역센터를 찾았다. 수어 중급반 수업을 막 끝낸 황인경(44) 강사를 만났다. 같은 농인(聾人)이지만, 수어 레벨이 높은 농통역사 조원주(40) 씨도 같이 앉았다. 마스크를 벗었으면 하는 눈치여서 취재진이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더 두었다. 두 시간 연속 강의에 지친 그녀를 위한 작은 배려였다. 취재를 도와줄 한소희 통역사도 동참했다. 그런데 첫 질문을 던진 건 인경 씨였다.

혹시 코로나 확진자 가운데 농인이 있어요?” “아뇨. 경남에는 없습니다.”

해외 유입 사례는 모르겠지만 국내에 농인 확진자는 없는 것 같다고 했더니 꽤나 표정이 밝아졌다. ‘농인 확진자 제로의 원인을 나름대로 분석했다.

우리는 소리를 내지 않으니 침방울이 튀길 염려가 없잖아요. 마스크까지 쓰니까 우선 안심이죠. 그리고 외출을 잘 하지 않으니까요.”

코로나 상황에서는 수어가 장점이구나생각했다. 그런데 외출을 잘 하지 않는다는 말은 스스로 자가 격리를 하는 듯해서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되물었다. “코로나 관련 정보를 몰라서 불안한 것은 없을까요? 걱정 안 해도 될 것을 걱정하는 그런 것 말이죠.”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 하더니 많은 대답을 쏟아냈다. 요약하면 필요한 정보는 다 알고 있다는 식이었다.

문자나 영상통화, 반복된 뉴스 그리고 무엇보다 텔레비전 뉴스에서 수어 통역화면이 작은 동그라미에서 전체 화면으로 커진 덕을 보고 있다고 대답했다. 영상통화는 시연을 해주기도 했다. 거치대에 휴대폰을 올려놓고 영상통화 기능을 이용해 수어로 소통했다.

정말 그런지 미안함을 무릅 쓰고 황 강사의 실력을 점검했다. ‘확진자, 백신, 거리 두기등 즉석 퀴즈를 냈더니 놀랍게도 척척 맞췄다. 100점이라며 박수를 보냈다. 



코로나 정보 개인 격차 해소해야 

문제는 그녀의 수준이 농인들의 평균인가 하는 점이다. 당장 경남의 18개 시·군 청각언어장애인은 28634. 그런데 수어로 대화가 가능한 농인은 10%를 밑돈다. 경남의 수어통역사 자격증을 지닌 전문가는 90명 수준이다. 더욱이 농인통역사는 20명도 되지 않는다. 취재 당일처럼 황 강사도 보조 통역사가 필요할 정도로 청각장애인의 일상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설상가상 코로나19 사태로 그들의 일상은 더 힘들어졌다.

함안군수어통역센터가 매주 수요일 수어 문맹인을 위한 강좌를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공식 통계는 없지만 수어 문맹률은 최소 30~40%로 추정한다. 경남도와 시군농아인지회가 코로나 정보를 알리고 있지만, 이해 정도는 개인차가 클 것으로 보인다. 한 통역사가 귀띔을 한다. “꼭 수어가 아니라 해도 농인들은 구화(口話)나 지어(指語), 홈 사인(home sign) 같은 다른 수단이 있어서 코로나 필수 정보는 대부분 알고 있다며 취재진을 안심시 켰다.

지어는 한글 자음과 모음을 손가락으로 표현한 것이다. 지어로는 영어의 알파벳도 가능하다. 코로나를 표현할 때 , , , , , 로 나눠 단어를 만드는 방식이다. 코로나 관련 정보가 새 수어로 정착되기까지 이렇게 지어(指語)를 활용한다고 했다.

경남판 코로나 표준수어 시연

수어에도 사투리가 있다. 나라마다 다르다. 한국 표준수어가 있고, 국제표준수어도 있다는 얘기다. 오는 2023년 제주도에서 열리는 세계농인대회를 앞두고 국제수어반을 운영하는 경상남도농아인지원센터를 찾았다. “독일 출신 필립 허거스 강사의 한국 수어 실력도 늘었다는 배경석 수어통역사 실장은 사실 요즘 유명인물이다. 경남도청 코로나 브리핑의 단골 통역사이기 때문이다.

국제수어반 수강생은 사실 수어통역사가 대부분이다. 이들과 코로나 관련 새로운 표준수어를 얘기하다 아예 직접 보급하자고 의기투합했다

이렇게 나온 것이 자칭 경남판 코로나19 표준수어이다. 가장 베테랑이라는 윤미선(48) 농인통역사를 대표 모델로 삼았다.

수어통역사는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을 거친다. 한 해 1,200명 정도 응시하면 필기에서 300~400, 실기에서 100~200명 정도 합격한다. 필기시험 합격자는 3년간 실기에 바로 응시할 수 있다. 생활방역 전파에 애를 쓰는 수어통역사들을 보면서 취재 내내 귓가를 맴돌았던 말이 있었다. “표정을 읽어야 의사소통이 정확한데, 입이 보이는 투명한 마스크는 못 만드느냐는 황인경 강사의 하소연이다.

 

 

 


 

 

최석철 편집장  사진 이윤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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