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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특집]가야유산 기획㉒ 권력의 아름다움, 가야의 사슴으로 부활하다

작성2020년 08월[Vol.89] 조회46

동물이 어떠한 대우를 받는지를 보면 그 나라의 도덕성과 위대함을 알 수 있다"

- 마하트마 간디 Mahatma Gandhi

 


화려한 왕관 때문에 슬픈 짐승

사슴은 중요한 식량자원이었다. 구석기시대 동굴이나 패총(貝塚)에서 다양한 사슴 뼈 유물이 나온다. 순하지만 재빠른 사슴을 노린 사냥기술이 발달했고, 그 모습은 반구대 암각화나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져 있다. 사슴고기는 지금도 고급식자재 중의 하나이다. 사슴뿔(鹿茸, 녹용사슴피(鹿血, 녹혈)까지 각광받는 이유는 화려한 왕관의 무게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사슴은 식량자원 그 이상이었다. 긴 뿔은 마치 지상과 하늘(또는 저승, 우주)을 연결시켜 주는 나무를 연상하게 하고, 화려한 뿔을 가진 사슴은 샤먼(Shaman, 샤머니즘에서 병을 고치고 공동의 제사를 주관하며 죽은 자의 영혼을 저세상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의 화신으로 인식되거나 제의(祭儀) 때 희생물로 사용되기도 했다. 특히 흰 사슴¹은 왕의 진상품으로 바치는 등 흰색의 아름답고 성스러운 비극은 끝이 없었다. 합천 옥전고분군 M3호분 등에서 사슴 뼈가 나왔다.

 

사슴모양토기, 아라가야 쿤스트캄머²에 보관되다

실제로 사슴을 형상화한 유물은 적은 편이다. 반구대 암각화나 부산 동삼동유적 토기, 경주 쪽샘유적 긴목항아리 등에서 드물게 확인되고 있다. 밀양 제대리유적 44호 돌방무덤에서는 뚜껑에 암수사슴을 새겨 넣은 것도 발견됐다.

함안 말이산고분군 45호 나무덧널무덤에서는 찰나의 미학을 보여주는 동물모양 토기가 출토됐다. 동물모양 토기가 대부분 정면을 바라보는 것과는 달리, 이 토기는 우연히 마주친 사슴 두 마리가 잠시 뒤돌아보는 순간을 정지시켜놓은 듯하다. 상형토기는 특정한 형태를 본떠 만든다. 그대로 모방했거나, 아니면 누군가의 의도를 반영했을 가능성이 높다. 원래 모방은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욕망, 실체 대신의 무엇을 가지려는 욕망을 반영한다. 실체를 대신하는 토기를 무덤에 넣어두는 행위는 권력의 상징이다.

그러나 함안 말이산고분의 사슴모양토기는 모방을 넘어 예술작품으로서의 위상도 지니지 않았을까? 부활과 장수, 신성함을 갖춘 사슴 예술품을 가진 아라가야 최고 권력자의 방은 온갖 진기한 예술품들로 가득했던 쿤스트캄머(Kunstkammer)’이었을지도 모른다. 무덤은 살아서의 모든 것을 다음 세대로 건네기 위한 애도(哀悼)가 퍼포먼스처럼 펼쳐지는 또 다른 기억극장이라 할 수 있다.

그릇에 그리거나 흙으로 구워 되살린 상형토기는 단순한 이미지의 반복 재생이 아닌, 어떤 시각적 질서를 보여준다. 또 아라가야의 권력, 그 소유자의 미적 감성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권력을 상징하는 금관이나 칼 등 권력의 위세품과 함께, 때로는 별개로 확인되는 상형토기에 대해서 이제 권력 이외의 관점에서도 고민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나는 뒤돌아본다. 고로 존재 한다

사슴은 경주 재매정지나 황남동 무덤에서 출토된 사슴토우, 사슴무늬 전돌에도 나온다. 사슴의 의미는 도교와 상응해 신선과 함께 다니는 영험한 동물로 각인되었고, 십장생(十長生)으로서 그 상징성을 부여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죽음을 통해 시간의 한계성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떠한 생명체도 불멸의 시간을 누릴 수 없었지만, 인간은 사슴과 같은 동물에 영속성을 부여하고 끊임없이 탐구하며 사색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인간은 사슴을 통해 원초적인 먹거리와 옷, 사슴 뼈로 만든 도구라는 실효성을 누려왔다. 또 하늘과 신과 연결해주는 아름다운 영적인 존재, 영원한 시간을 거니는 정신세계의 수호자 등 멀티 플레이어(multiplayer)처럼 여겨왔다.

 

요즈음 암사슴에게 뿔을 나게 하려는 자연과학적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위축된 사슴농가로 보면 새끼와 뿔(=녹용)을 한꺼번에 얻을 수 있는 특허기술로 비쳐진다. 그런데 과연 옳은 일일까? 암사슴에게 수사슴의 뿔을 인공적으로 나게 하여 소득을 올리려는 인간의 야심은 언젠가 부메랑이 될 것이다.

노자의 도덕경에는 존재와 비존재, 있음과 없음을 논함에 있어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드는데, 그 가운데가 없기 때문에 그릇으로 쓸모가 생겨난다고 했다. 천년이라는 영원불멸한 삶의 무게를 짊어졌던 사슴은 시간을 비워놓았기 때문에 또 다른 시간을 채워 넣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숲 속에서 우연히 만난 사슴이 뒤돌아보듯이 오늘도 무언가를 비워내야 또 다른 무언가를 채워 넣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 사슴모양토기를 바라보던 아라가야의 어느 권력자도 그러한 시선을 가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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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연의 색이 아닌 흰색으로 표현되는 현상을 백색증(albinism) 또는 알비노라고 한다. 알비노는 멜라닌 합성이 결핍된 선천성 유전질환으로, 피부털이 모두 백색인 증상과 눈만 백색인 증상으로 구분된다.

2) 16세기 독일권에서 사용하던 용어로 예술품이 가득 찬 경이로운 방, 공간이라는 뜻

 

 

·사진 김현희 국립제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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