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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반하다

[사람에 반하다]“리어카에 사랑을 용접했어요”

폐지보다 사람이 먼저입니다

 

출퇴근길에서 마주치는 폐지수레는 대부분 노인들의 일터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폐지더미와 노인 가운데 무엇을 먼저 보는가? 이들 때문에 길이 더 막혔다거나 사고를 낼 뻔했다는 불평도 종종 듣는다. 그런데 여기 사람을 먼저 주목한 이들이 있다. 브레이크 달린 폐지수레, 이른바 사랑의 리어카를 어느새 400대나 선물한 봉사자들을 만났다. 김일록(59) 명장도 그 주인공이다.

 

 

낡고 무거운 리어카에서 가볍고 산뜻한 리어카로

지난 11, 창원시 마산합포구의 음식점들이 즐비한 한 골목길. 상점 앞에 놓인 빈 박스를 리어카에 담고 있는 김순자(70·가명) 씨를 만났다. 그런데 그의 리어카는 밝고 가벼워 보인다. 평소 길에서 많이 보던 낡고 무거운 리어카와는 확실히 달랐다.

예전에는 고물상에서 대여해 주는 리어카를 사용해 폐지를 수거했어요. 지금은 러브 리어카, 요 녀석으로 폐지를 모으고 있죠. 가볍고 운전도 수월해 잘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의 전용 수레(러브 리어카 348)는 경상남도자원봉사센터에서 기획하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기술봉사팀이 만든 이른바 한정판이다. 지난해 9월 복지관을 통해 전달받았다. 김 씨는 사랑의 리어카로 오전 10, 오후 3, 10시 하루 3번씩 폐지를 거둬 간다.

고물상에서 주는 리어카는 무겁고, 운전이 잘 안 되는 것도 있어요. 사랑의 리어카는 브레이크가 있어서 차량이 지나가거나 급하게 정지해야 할 때 브레이크도 사용할 수 있어서 좋아요.”

무엇보다 색상이 눈에 띄다 보니 주변 상점에서 박스를 직접 리어카에 담아놓는 일도 있다. 덕분에 힘들게 끌고 가는 수고가 줄어 노인들에게는 12조인 셈이다.

 

 

대한민국 명장사랑의 리어카를 만들다

몇 년 전, 한 할머니께서 낡은 리어카에 폐지를 싣고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돌아가셨다는 뉴스를 접했어요. 내리막길에서 할머니의 힘으로 도저히 리어카를 멈출 수가 없어 달려오는 차를 피하지 못하시고 사고를 당하신 거죠. 그 후 한 가지 제안을 받았습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사업장에서 용접 마이스터로 일하고 있는 김일록 명장. 그는 지난 201312월 경상남도자원봉사센터로부터 뜻밖의 요청을 받았다. 바로 폐지수거용 리어카를 개선해 어르신들의 안전을 지켜주자는 제안이었다. 이런 걸 운명적 만남이라고 하는 걸까? 얼마 전 뉴스를 떠올린 김 명장은 곧 15명의 팀원과 함께 재능봉사팀을 결성했다.

 

 

용접명장도 끙끙댄 브레이크 달린 리어카 탄생

김 명장은 금속용접분야에서는 최고인 대한민국 명장이다. 안전하고 가볍고, 운전하기 편리한 리어카를 만드는 프로젝트는 용접 1인자라는 그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도 했다. ‘리어카에 브레이크를 달아보자, 무게는 줄이고 밤에도 눈에 잘 띄게 만들자.’

그런데 브레이크 달린 리어카를 현실로 만드는 과정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팀원들과 의견을 교환하며 시제품을 만들었지만 자존심이 상할 정도였다. “처음 만든 집게형 브레이크는 자전거 브레이크처럼 바퀴 휠을 잡아주는 방식이었어요. 그런데 반 바퀴도 가지 못하고 이탈하고 말았죠.”

당황스럽기까지 했지만 그때 그 뉴스를 기억하며 초심으로 돌아갔다. 실패를 거듭한 끝에 드디어 해법을 찾았다.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하는 것. 철판을 구부려 구르는 바퀴에 마찰력을 높이는 방식으로 제작했다. 그렇게 몇 번의 실험을 거쳐 탄생한 브레이크는 내리막길 실험에서도 성공을 거뒀다.

 

 

무게 줄이고 야간 안전도 확보

다음은 무게를 줄이는 데 집중했다. 노인들의 근력을 배려한 필수 과정이었다. 보통 리어카는 58. 여기에 폐지무게까지 더해지면 어르신들에겐 너무 버거웠다. 그래서 먼저 크기를 줄이고, 경량 철근으로 바꿔 마침내 32까지 줄이는 데 성공했다.

무게를 줄인 후, 야간에도 잘 보일 수 있도록 경광등을 달았습니다. 깜박이 불빛으로 차량 운전자나 행인들의 눈에 띄게 만들었죠. 태양광을 충전해 등을 밝히기 때문에 비용도 거의 들지 않습니다.”

야광 빛 반사 스티커까지 부착해 야간 안전을 확보하고 밝은색 페인트를 칠해 더욱 잘 보이도록 했다.

 

 

러브 리어카 400호 탄생, 팀원들의 협력이 비결

매월 3~4대씩 만들어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어르신들에게 전달해온 사랑의 리어카는 어느새 400호가 탄생했다. 대당 50여만 원 비용이 드는 리어카는 창원시를 비롯해 도내 곳곳으로 전달했다.

사랑의 리어카를 받으신 어르신들이 재산 1호라며 무척 기뻐하세요. 고맙다고 손을 꽉 잡아 주실 때 정말 뿌듯했어요. 함께해 준 팀원들에게 너무나도 감사한 마음입니다. 이제 3년 남은 정년 때까지 500대를 채우고 싶어요.”

사랑의 리어카를 만든 지 어느새 7. 그동안 계속 기능을 업그레이드하고, 유지보수 A/S도 해주고 있다는 그는 길을 가다 사랑의 리어카를 보면 그리도 반갑다고 했다. 시집보낸 딸을 만나는 기분이란다.

 

 

 

리어카에 사랑을 용접하다경남자원봉사대회 대상

또 그는 기쁜 소식도 전했다. “지난 9, 2020 경상남도 자원봉사 대축제 이그나이트 경남대회에서 리어카에 사랑을 용접하다라는 주제로 사례를 발표해 대상을 수상했어요. 대회 참여를 몇 번이나 거절하다가 용기를 냈어요. ‘이그나이트가 불을 붙인다는 뜻인데,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주면 그분들도 봉사를 시작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시작했어요.”

대상 수상 후 받은 상금 70만 원도 기부했다는 김 명장. 자신의 작은 나눔으로 이웃이 따뜻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것이 나눔이자 배려라는 그의 말처럼 올 연말 작은 나눔을 실천해 보는 건 어떨까?

 

  

 

배해귀 기자 / 사진 김정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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