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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반하다

[사람에 반하다]김치5, 고희에 부르는 평화 노래

“난 아직도 배에서 내리지 않았다”

501225-*******. 그의 주민번호는 이렇게 시작한다.

다른 사람이라면 개인정보 누출에 해당하지만 그의 출생기록은 사실 노출돼 있다. 아니 알리고 싶어 한다.  

19501225일생, 김치5(Kimchi number 5), 이경필 원장(70)은 이렇게 남다른 한평생을 살고 있다.

오는 1225, 고희(古稀)를 맞이하는 그의 일생은 한반도의 분단사이기도 하다.

선친의 묘소를 찾는 이 원장의 뒷모습은 언제나 다소곳하다.

돌아가신 이후의 그리움 탓도 있지만, 아직 못다 이룬 유훈이 있어서다.

북녘에 가는 길이 열리면 내 뼈를 고향에 묻어다오.”

그는 아직 선친 이석초(1996년 작고) 옹의 유지를 받들지 못하고 있다. 11월 초 다시 산소를 찾던 날

잔디에 가려졌던 상석에 함경남도 흥남시 구룡리 164’라는 고향 주소가 또렷이 새겨져 있다.

  

이경필 원장(김치5) ‘평화, 이웃가슴에 새겼다

선친의 생전 가르침은 크게 두 가지였다. ‘평화를 사랑하고 이웃에 감사하라는 당부는 수도 없이 들었다. 고향 흥남에서 사진관을 했던 선친은 거제도에 온 뒤에도 평화사진관, 평화상회 등 간판을 내걸 때마다 평화를 빠뜨리지 않았다. 이 원장이 운영하는 장승포가축병원의 옛 이름도 평화가축병원이었다. 물론 이들 부자의 평화는 한반도의 평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들의 이웃은 단순한 이웃사촌을 넘어선다. 한국전쟁 당시로 올라가야 첫 이웃들을 만날 수 있다. 19501223, 이 원장의 선친은 큰 아들(3)과 아내를 데리고 피난선에 올랐다. 메러디스 빅토리 호! 60명 정원의 이 연료운반선에 탄 피난민은 무려 14000. 부산을 거쳐 거제에 정박하는 23일의 항해가 끝날 무렵 이 원장이 태어났다. 피난선에서 난 다섯 번째 아이, 그는 미국 선원들이 붙여준 김치5’라는 이름으로 크리스마스의 기적그 주인공이 되었다.

그에게 이웃은 흥남부두에서 전략무기를 버리고 피난민을 태운 미군 제10군단장 알몬드 장군, 작전참모 에드워드 포니 대령, 레너드 라루 선장, 해상 기동부대사령관 도일 제독, 알몬드 장군의 민사자문관 현봉학 의사, 47명의 선원 등 끝이 없다. 이들 모두 피난민 속에 적군의 첩자가 있을 수 있다는 합리적 이유도 뛰어넘은 이웃들이었다. 그러나 중공군의 남하를 피해 흥남부두로 몰려든 피난민 모두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안팎의 설득이 최고 사령관의 마음을 돌려놓았다. 당시 선원들은 배에서 내린 피난민들이 배를 향해 큰 절을 하던 모습을 잊을 수 없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1950년 당시 거제주민들의 헌신 잊지 못해

이 원장 가족들이 잊지 못하는 이웃들은 또 있다. 흥남에서 뱃길로 724떨어진 부산에 도착했지만, 흥남발 피난선들은 다시 거제로 뱃길을 돌려야 했다. 부산은 이미 만원이었다. 80를 더 항해하는 사이 김치1(손양영·70·생존)을 시작으로 김치 형제 5명이 차례로 태어났다. 산파들이 이로 탯줄을 끊어야 했을 정도로 열악했던 갑판에서 14005명으로 늘어난 피난민들을 따뜻하게 맞아준 사람들이 바로 당시 거제주민들이었다. 주민들은 먹을거리와 잠자리를 내주며 전란의 아픔을 나눴다.

이웃에 감사하라는 가르침에 따라 이 원장은 평생 은혜, 나눔, 보답을 가슴에 새겼다. 선친이 운명한 뒤 그는 평화가축병원에서 장승포가축병원으로 간판을 바꿨다. 평화에 이어 이웃(장승포)에 감사하며 살겠다는 또 한 번의 다짐이었다.

이제 70, 고희를 맞도록 그는 한국과 미국을 넘나들며 고귀한 희생으로 생명을 구원해준 이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살고 있다. ‘그것이 나의 운명이라고 했다. “나는 아직 배에서 내리지 않았다고 고백할 때는 취재진도 울컥했다.

 

 


흥남철수기념공원 추진에 여생 바치겠다

그에게 남은 과제는 흥남철수기념공원(이하 기념공원)을 짓는 일이다.

사실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도 빅토리 호를 탄 피난민이었다. 10년의 우여곡절 끝에 기념공원조성사업은 2020년 문화관광부 지원 사업에 선정됐다. 메러디스 빅토리 호가 처음 닿았던 장승포여객선터미널이 기념공원 부지로 결정됐다. 지난달 터미널 부지를 친수시설로 바꾸는 정부의 결정이 내려지면서 기념공원사업이 가속도를 내고 있다.

도비와 시비 등 150억 원을 투입해 오는 2024년 문을 열 계획이다. 총 부지 l21314에 전시관, 4D체험관, 야외공원 등을 비롯해 지난 2005년 거제포로수용소에 세운 흥남철수작전기념비 등도 이전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번 미국 대선 결과도 흥남철수기념공원 조성에 청신호로 여겨지고 있다. 메러디스 빅토리 호는 고철로 사라졌지만, 똑같이 건조된 레인 빅토리 호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역사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레인 빅토리 호의 인수에 반대해왔다며 바이든 당선자에게는 기대감을 나타냈다.

 


 

자녀들에게 피난선 양보한 할머니 보고 싶어

고희가 되어서도 김치5가 평화의 노래를 멈추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70년 전 1223, 흥남부두에서 피난선에 오르지 못한 수많은 가족들이 있었다. 김치5의 할머니도 아들 부부와 큰 손자와 생이별했다. 5앞까지 중공군이 밀려온 상황에서도 “3일 뒤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말로 안심시키며 당신은 선착장에 남았다. 자녀들의 승선에 누가 될까 목숨을 양보한 선택이었다.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는 그의 할머니 같은 희생을 기리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그가 칠순에도 평화의 망향가를 부르는 이유는 그 할머니를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편 현재 거제에는 메러디스 빅토리 호 승선자 가운데 이애자(93·사진) 씨 등이 생존하고 있다.

 

 

생명의 항해 제70주년 기념 평화음악회

거제문화예술회관(관장 장은익)1218일 오후 5시 흥남철수 70주년을 기념하는 평화음악회를 연다. 이번 공연은 전장에서 꽃핀 위대한 휴머니즘, ‘생명의 항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메러디스 빅토리 호 관련 생존자와 가족, 주한미군 측 관계자들이 초청됐다. 해군이 된 연예인과 소프라노 최정원, 해군본부 군악대 등이 출연해 창작 헌정곡 메러디스 빅토리(이용주 작곡)’와 참전 16개국 대표곡 메들리, 굳세어라 금순아, 크리스마스 캐럴 등을 공연할 예정이다.

 


최석철 편집장 / 사진 김정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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