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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경남역사

[아하! 경남역사]가야유산 기획⓫ 황금칼의 나라, 다라국을 아십니까?

 


 

합천의 가야 다라국

합천군 쌍책면에는 가야인의 무덤유적인 옥전 고분군(사적 제326)과 생활유적인 성산토성(경상남도 기념물 제293) 그리고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하는 합천박물관이 있다. 그런데 이곳을 찾는 방문객은 대부분 , 합천에도 가야가 있었나?’라며 호기심을 보인다. 방문객들의 이러한 반응은 가야에 대한 문헌기록이 부족하다는 점과 삼국유사에 나오는 ‘6가야에 대한 인식이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글에서는 옥전 고분군과 성산토성을 통해 이른바 ‘6가야라고 불리는 가야 외에 어쩌면 생소할 수 있는 가야의 한 나라였던 다라국(多羅國)을 소개하고자 한다.

 

황금칼을 품은 옥전 고분군

1987년 추운 겨울, M3호분 내부 조사를 하던 발굴조사원의 눈에 한 덩이의 흙이 떨어진 자리에서 황금빛 금판이 드러난 것이 보였다. 조심조심 조금씩 흙을 걷어내자 손잡이 끝 고리 안에 용과 봉황이 새겨진 큰 칼이었다. 무덤에서는 모두 4자루의 용봉문양 고리자루큰칼이 출토됐다. 이 지배자 무덤에 대한 조사는 새로운 가야의 역사를 알려주는 획기적인 발견이었다.

용봉문양 고리자루큰칼은 무기류 중에서도 최고 위계의 유물로서 아주 큰 규모의 무덤에서도 한 자루 정도만 확인된다. 이런 귀한 유물이 M3호분에서 4점이나 출토됐다는 것은 이 고분의 주인공이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지배자라는 것을 말해준다.

 

 

또한 으뜸덧널(主槨)의 중앙에는 주조(鑄造) 쇠도끼 121점을 깔아 널받침(棺臺)을 만들었는데, 이는 복천동 고분군과 대성동 고분군의 대형덧널무덤 바닥에 덩이쇠(鐵鋌)를 까는 방식과 유사하다. 이 유물들 외에도 M3호분에서는 금동장식투구를 비롯하여 말머리가리개, 금동장식 말갖춤과 여러 종류의 토기들이 출토됐다

이처럼 M3호분이 도굴의 피해를 입지 않고 온전한 상태로 발굴될 수 있었던 것은 덧널을 덮는 뚜껑이 돌이 아니라 나무였다는 점과 으뜸딸린덧널(主副槨)이라는 구조 때문이었다.

그 밖의 여러 무덤에서도 철제의 갑옷과 투구, 말 갑옷, 금제귀걸이, 목걸이 등 가야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25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됐다. 이 중에서 특히 눈에 띄는 유물은 M1호분에서 출토된 로만글라스(Roman glass)’라고 불리는 유리잔이다. 이 유물은 고() 김원룡 서울대 교수가 금관보다 더 귀한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가치 있는 유물이다. 그 이유는 이 유리잔이 멀리 지중해로부터 광활한 실크로드를 거쳐 들어온 것으로 서역과의 문물교류를 보여주는 핵심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옥전 고분군은 우리나라 고분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유적이어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가야사를 설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다라국의 도성, 성산토성

옥전 고분군에서 남쪽으로 불과 300m의 거리에는 이 무덤의 주인공들이 살았던 성산토성이 있다. 이 성곽유적은 여러 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해 북쪽과 동쪽부분은 토성벽(), 남쪽부분은 석성벽()으로 이뤄진 토석양축성(土石兩築城 : 단 토성의 비율이 높아 성산토성이라 부름)으로 밝혀졌다. 황강과 만나는 서쪽은 자연 절벽을 그대로 사용했다. 그 둘레는 1094m이고, 전체 모양은 네모꼴에 가깝다.

토성벽은 지면과의 각도를 높이기 위해 내부는 돌로 쌓고 외부를 흙으로 마감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이는 금관가야의 땅인 김해의 봉황토성에서도 확인된 것으로 가야의 특징적인 축성방법으로 파악하고 있다. 석성벽은 두께와 형태가 다양한 돌을 사용하고, 외벽의 경사각이 68˚ 내외를 이루는 점, 뒷채움 방식 등에서 신라의 그것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성 내부에서는 목책(木柵)시설, 제사유적, 대벽건물지(大壁建物址 : 기둥이 흙벽 속에 있어 바깥에서는 보이지 않는 구조) 등 가야인들의 다양한 생활형태를 가늠하게 한다. 대벽건물지는 백제 정지산유적이나 전()대가야왕성지 등에서도 발견되고 있어 일반 주거용보다는 왕이나 귀족들의 특수 주거시설이나 관용건물 등의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이 생활유적들에서는 옥전 고분군에서 나온 것과 똑같은 토기들이 확인돼 두 유적이 같은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확인됐다. 성산토성은 대벽건물지와 제사유적, 그리고 지배자 집단의 무덤인 옥전 고분군과의 관계로 미뤄 볼 때 다라국 지배자들이 생활하던 도성임이 분명하다.

 

 

 

다라국의 부활을 꿈꾸며

최근 옥전 고분군의 미복원 지역에 대한 발굴조사 및 유적 복원, 성산토성의 사적 승격 추진과 성곽 복원 등 옛 다라국의 모습을 복원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가야의 당당한 일국이었던 다라국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이 유적들이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가야의 새로운 이야기를 어떻게 들려줄지 새삼 기대된다.

 

박준현 합천박물관 학예연구사  사진제공 합천박물관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심의 2022

 

문화재청 탁월한 보편적 가치 근거 보완

등재추진단 연구역량 강화내년 재도전

 

김해 대성동을 비롯한 7개 가야고분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신청하려던 일정이 1년 보류됐다.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세계유산분과)는 지난 7월 30일 가야고분군에 대한 심의 결과 세계유산 등재신청 대상 심의를 1년간 보류했다이로써 세계유산 등재 목표시기 또한 2022년으로 늦춰졌다문화재청 관계자는 “OUV(탁월한 보편적 가치)와 비교연구가 보완돼야 한다고 밝혔다.

문화재청 세계유산분과위원회(위원 8위원장 서경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지난 4월 가야고분군을 세계유산 등재신청 후보로 선정하면서 조건을 달았다세계유산 확정의 중요 기준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 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뒷받침하는 구체적 근거를 보완하라는 주문이었다그동안 가야고분군 세계유산등재추진위원회는 조건부 해소를 위해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다연구진 보강에 애로가 있었고 심의위원의 교체에 따른 스킨십 부족도 원인으로 작용했다.

 

보류 결정이 오히려 약 … 2020년 재도전

그러나 등재신청 심의를 보류했다고 곧 등재 포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세계유산 등재의 절차가 그만큼 까다롭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 것에 불과하다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된 한국의 사찰(산사)과 서원도 이러한 고배를 연거푸 마셨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국내 심의기간만 산사는 4년 11개월한국의 서원은 6년 3개월이라는 준비기간을 거쳤다이에 비하면 가야고분군은 3년 6개월로 가장 짧다.

게다가 대상 고분군도 최근 1년 사이 3곳에서 7곳으로 늘었다. 1년 보류 결정이 유네스코의 최종 심사를 통과하는 데 오히려 약이 될 것으로 보는 중요한 이유다.

가야고분군 세계유산등재를 추진해온 경남도는 경남연구원의 연구역량을 강화하는 등 재정비에 나섰다올 연말까지 조건부를 해소해서 내년 7월 세계유산 등재신청 대상 선정 심의에 재도전하기로 했다심의 보류를 결정한 위원들도 기술적인 부분만 보완한다면 가야고분군의 등재 가능성은 높다고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올해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대상 확정을 앞두고 문화재청은 지난 7월 김해를 시작으로 함안합천고령 등을 자전거로 돌며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확정 분위기를 띄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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