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5시 30분, 잠수선은 출항 준비로 분주하다. 거제 장목항을 떠나 20분을 ‘통통’거리며 저도(대통령별장) 앞바다에 도착했다. 거가대교 위·아래 하늘과 바다가 서로를 비추고 있다.
모구리에게 망태가 생명선?
배는 멈췄지만 갑판에서는 긴장감이 흐른다. ‘모구리’가 입수를 준비하면서 선장과 선원들도 바빠졌다. 모구리가 가슴과 등에 납(35㎏)을 달고 물속으로 사라졌다. 이때 세 가닥의 줄도 함께 들어갔다. 한 가닥은 분사기(물총), 다른 하나는 공기 호스(전기선, 랜턴, 신호기 포함), 그리고 생명선(망태)이다. 산소를 공급하는 공기 호스를 제쳐두고 개조개를 담는 망태기 줄을 생명선이라 부르는 것도 놀라웠다.
선장은 세 줄이 스크루에 감기지 않기 위해 이리저리 배를 돌리고 지나가는 배들에게 둘러가라며 기적을 울린다. 갑판에 남은 선원은 줄이 서로 꼬이는 것을 막느라 부지런히 움직인다.
모구리(일명 머구리)는 ‘잠수하는 사람’이라는 일본어(もぐり)에서 왔다. 어떤 이는 잠수할 때 보글보글 올라오는 물방울에서 유래했다고 하지만, 신빙성은 없다.
90분 작업, 10분 휴식 반복
얼마나 지났을까? 신호가 ‘삐삐’ 울린다. 모구리 하정순(64·경력 45년차·사진) 씨가 올라오는 신호인가 보다. 그런데 하 씨가 올라오는 데 20분이 걸렸다. 수심 20m까지 내려간 탓에 수압에 적응하는 감압과정을 거치는 까닭이다. 이를 무시하면 잠수병에 걸린다. 장목 제1, 2구 잠수기수협에서는 1996년부터 당시 3억 원(현재 10억 원)을 들여 ‘고압챔버기’를 갖추고 모구리들을 잠수병으로부터 보호하고 있다.
배 위로 올라온 하 씨는 20분 정도의 휴식을 취하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보통 90분 작업, 10~20분 휴식을 반복하며 대여섯 번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하루 작업이 끝난다. 작업을 마친 모구리배(잠수기)는 또 ‘통통’거리며 장목항으로 돌아왔다.
장목항 우리나라 잠수기어업의 요람
장목항은 우리나라 잠수기어선이 제일 많은 국가어항이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남해연구소도 있다. 거제도의 북쪽 끝에 자리한 장목항은 부산, 구 진해·창원·마산, 고성 등에 부챗살 모양으로 둘러싸인 곳이다. 쿠로시오해류의 동한 난류와 북한 한류가 만나는 지점으로 다양한 어종이 서식하며 조개류의 산란장소로도 유명하다.
해산물을 잡는 어업은 여러 방법이 있으나 조개류나 멍게, 해삼, 전복 등은 해녀와 모구리의 몫이다. 산소 호흡 장치를 이용하지 않는 나잠어업은 제주도 위주로 발달했다. 잠수기 어업은 강원도와 경상남도가 중심이다. 1858년 일본에서 시작된 잠수기 어업이 한국으로 도입되면서 1879년 거제도 장목을 기점으로 제주도와 강원도 등 전국으로 확산됐다. 1910년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잠수기 어선은 400여 척이었지만, 한국 어선은 3척뿐이었다. 1950년대 중반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미군사령관과 저도에서 낚시를 하던 중 불법 모구리배를 보고 합법화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경남도 잠수기어업 보존 특화전략
그 이후 모구리배는 크게 늘어나 현재 경남에는 93척이 있다. 이 중 40여 척이 장목항에 기지를 두고 있다. 그러나 바다 오염이 심각해져 잠수기어업은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다. 경상남도에서는 지역별로 특화전략을 수립해 보존에 나섰다. 거제에는 개조개, 통영에는 전복·해삼·멍게, 사천에는 바지락, 남해에는 개불 등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배는 제1, 2구 잠수기 위판장이 있는 곳에 다다랐다. 오늘 작업량은 10망태(100㎏), 경매가는 ㎏당 1만 원이다. 상당히 비싼 가격이다. 장목에서 위판하는 개조개는 1년에 70억 원 정도라고 한다.
껍데기째로 끓이시라
일정을 끝내고 인근 식당으로 갔다. 맑은 조개탕을 시켰다. 개조개는 내부 불순물을 없애는 ‘해감’을 거친다. 장목위판장에서는 해감을 마친 상태로 판매한다. 개조개 맑은 탕은 개조개를 넣고 물을 끓이면서 땡초, 대파, 마늘, 소금을 넣어 간을 맞춘다. 뽀얀 국물에 담백하고 감칠 맛 나는 주인 할머니의 손맛은 수십 가지 보약을 먹는 듯 묘한 맛이다. 이는 조개껍데기의 비밀이기도 하다. 개조개 맑은 탕을 끓일 때에는 필히 껍데기째로 끓이길 권한다.
글·사진 옥건수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