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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경남역사

[아하! 경남역사]【구술로 듣는 6·25】 6월의 푸른 그리움, 우리 아버지

보도연맹 실종자 유가족을 만나다

올해도 어김없이 6월이 찾아온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휴전상태의 분단국가이기에 6월이 되면 가슴에 울분을 삭히는 이들이 많다. 6·25 전쟁 중에 아버지의 갑작스런 실종과 70여 년이 지나도록 진실을 알 수 없어 애태우는 유가족을 인터뷰 하게 됐다. 이호우(78 ·창원시 마산합포구) 씨의 아버지는 ‘잠깐 할 이야기가 있으니 동행하자’라는 순사를 따라간 그 날로 지금까지 실종된 상태다.

194812월 시행된 국가보안법에 따라 극좌 사상에 물든 사람들을 사상 전향시켜 보호하고 인도한다는 취지로 조직된 국민보도연맹(國民保導聯盟). 이승만 정권이 대국민 사상통제를 목적으로 194965일에 조직했던 반공단체로, 흔히 보도연맹이라고 부른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국군 및 경찰이 보도연맹원들의 인민군 가담이나 기타 부역행위를 우려해 이들을 조직적으로 학살하는, 이른바 보도연맹사건이 발생했다고 기록돼 있다.

·사진 박미혜 명예기자

 

이영석 (李永錫) 19061115일생

아버님 기록의 시작입니다. 아버님은 일본 와세다대학교 유학을 다녀온 후 결혼을 하고 부모님과 함께 살며 교편을 잡았습니다. 실종될 당시 진해공립중학교에서 교감으로 근무하셨다고 합니다. 마산고등학교에서도 교감으로 근무하셨다고 합니다. 아버지와 마지막 기억은 저의 기억이기보다, 돌아가신 누님의 기억입니다. 누님한테 들은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에요.

아버님이 퇴근을 해서 저녁을 드시던 중 당시 남성파출소 이 순사(?)가 찾아와 잠시 서에 가서 이야기 좀 하자고 하더랍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순사라서 별 의심 없이 고무신을 신은 채 따라 나가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가서 돌아오지 않으셨다고. 누님의 기억으로는 50628일 즈음이라고 했어요. 그때 아버님은 44세였습니다.

6·25가 터지고 보도연맹 관련 사람들을 시민극장에 집합시켜서 트럭에 싣고 마산교도소로 데리고 갔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보기도 했는데 기록이 없다는 이야기만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한참 뒤인 611020일에 아버님 사망신고를 했어요


이호우 씨는 당시 아버지가 근무했던 진해공립중학교(진해고등학교)에서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보았지만 1950년 이전의 학교기록이 없어 근무 행적을 찾을 수 없었다. 육군본부에서도 재판기록 등이 남아 있지 않다는 답변만 받았다.

이호우 씨의 아내인 구정자(77) 씨가 교사 근무를 위해 필요서류를 준비하면서 시아버지의 교편경력이 가산점이 된다는 것을 알고 찾아본 적이 있다. 그 때 경북 김천중학교에서 1940년부터 약 1년간 재직했다는 증명서를 받았다하지만 그 이후 경남에서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어서 애를 태웠다. 부친이 20대부터 적었던 일기와 학교 근무를 하며 틈틈이 작성한 노트 등 기록이 있지만 정부에서는 자료로 인정해주지 않고 있어서 억울함을 풀 길이 없는 게 현실이라고 한다.

진실화해과거사정리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보도연맹 관련 희생자는 마산지역 구산면 괭이바다 수장자만 해도 1681김해와 창원 일부 지역에서 750, 김해 진영에서 335, 김해 대동면 주동광산과 인근 숯가마에서 400, 거제에서 878명이 학살됐다.

지난해 1120, 희생자 15명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밝혀야 할 진실의 무게는 무겁기만 하다아버지와의 마지막 기억조차 희미할 만큼 아들 이호우 씨 역시 나이가 들었지만 그리움만큼은 소년시절의 마음 그대로이다관계기관과 협조해 억울한 희생자들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우리 세대의 몫이 아닌가 한다.

  

나는 아버님의 억울한 죽음을 규명하고 싶은 겁니다

여기저기 묻고 조사를 하고 다니니 보상 얘기부터 먼저 하는데보상은 차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우리만 피해자는 아니니까요

그것보다는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규명이라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요즘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힘들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만 그래도 정의는 살아있는 거 아닙니까포기하지는 않을 겁니다아버지니까요.

 

   박미혜 명예기자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삶을 기록하는 생애구술사다

   지난해 6·25 70주년을 맞아 충북학연구소에서 비상임연구원으로 민간인학살 피해 유가족 구술작업을 진행

   하면서 보도연맹 피해자 유족들을 만나기 시작했다이호우 씨 부부는 경남에서 만난 피해자 유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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