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갑판

상갑판

화기를 사용하는 포수와 신호수가 활동하는 공간이다.

조선 후기의 문헌에 “조선의 군선은 모두 3층으로 구분되어 있다”는 것은 갑판 위에 상갑판이 또 설치되었음을 뜻한다. 거북선의 상갑판은 복판으로 덮여있었다. 복판으로 덮여 있는 상갑판은 조선 수군의 주력무기였던 각종 총통이 위치해 있던 곳이다.

상갑판
식수·방화수

나무배의 특성을 고려한 화재 대비 및 식수용 물통

지휘실

‘장대’ 라고도 하는데 거북선의 선장(장군)이 머물며 작전을 지시하는 공간

돛줄 지지대

거북선 돛줄의 경우 방패연과같이 여러줄을 사용했기 때문에 이들을 한꺼번에 고정하는 시설이 필요

총통 점화 화로

총통의 심지에 불을 쉽게 붙일 수 있도록 화포 주변에 설치

용머리

임진왜란 당시 용머리 입에서화포를 발사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볼때 용머리가갑판과 수평이었을 것으로 추정

우리 고유의 노를 이용하여배를 앞뒤로 움직이거나제자리에서 회전도 가능

돛 지지대

돛 지지 기둥과 더불어 돛대를 고정하는 장치

화포

움직이는 배 위에서도 사방을 향해 설치된 화포를 이용해 사격이 가능

이미지출처 : 거북선 신화에서 역사로

『충무공전서』의 거북선 설명은 임란 당시 활약한 거북선이 아니라 『충무공전서』가 발간될 당시인 정조 때 거북선을 설명한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임란 때 거북선의 구조가 상당부분 남아 있다.

“배 위에는 판자를 덮고 판자 위에는 십자로 좁은 길을 내어 사람이 겨우 다닐 수 있게 했다. …… 총구멍[銃穴]은 전후좌우에 각각 여섯 개로 큰 탄환을 쏜다. 복판(覆板) 위에 거북 무늬를 그렸고 복판 좌우에 각각 문이 2개 있으며, 거북 머리 아래 총구멍이 2개, 舷板 좌우에 총구멍이 각각 1개, 현판 난간 좌우에 총구멍이 10개, 복판 좌우에 총구멍이 각각 6개, 좌우 노는 8개다.”(『충무공전서』 권수 귀선도설)

위 기록은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의 활약이 출중했다는 평가에 따라 거북선이 돌격선의 임무에서 일반전선의 임무로 전환되면서 선체가 커지고 무장도 증가되었을 때의 모습이다. 임란 당시 거북선은 상갑판에 총통 6개가 설치되었다. 그래서 덮개인 복판에 총혈 6개가 나 있었다고 영조 때 영남균세사 박문수는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신이 충무공 이순신의 기록을 보았더니 거북선의 좌우에 각각 6개의 총혈이 나 있었는데, 지금은 각각 8개의 총혈을 내었으니, 거북선이 종전에 비해 지나치게 커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영조실록』 27년 2월 기축)

박문수의 증언에 따르면 임란 때 거북선은 복판에 총혈 6개가 있었다는 사실로 보아 상갑판 위에 총통을 설치했음이 분명하다. 총혈 6개에서 8개로 증가한 것은 거북선이 돌격선에서 판옥선과 같은 화력전선의 임무로 전환된 것을 의미한다. 『증보문헌비고』에도 이와 같은 기록이 있다.

“이순신이 지혜로 대선을 창작했는데, 모양이 엎드린 거북과 같으므로, 이름을 거북선이라 했다. 그 제도는 …… 앞은 용두이고 뒤는 거북꼬리인데, 모두 총구멍이 있으며, 전후좌우 각각 6곳에서 큰 탄환을 쏜다.”(『증보문헌비고』 120 주사, 조선)

『충무공전서』에 도면으로 제시된 거북선은 통제영 거북선과 전라좌수영 거북선이다. 두 거북선 중 임란 당시 출전한 거북선의 선제가 남아 있는 것은 전라좌수영 거북선이다. 전라좌수영 거북선 복판의 총혈 6개가 바로 거북선의 3층구조를 설명해 주는 단서이다.

거북선의 포가 상갑판에 위치했었다는 것은 판옥선의 장점, 즉 높은 곳에서 아래로 화포를 발사하여 사정거리를 멀게 하고 명중률을 높이기 위한 이순신의 지혜였으며, 좁은 공간에 전투인원을 적절히 분산하여 전투효율을 높이기 위한 계책이기도 했다. 동시에 포 요원의 안전을 위해 상갑판에 복판을 씌웠다. 그러나 복판은 포수의 안전에는 큰 도움을 주었지만 지휘통신이나 총통 발사 때 분출하는 화염은 포수의 시야를 가리는 결점이 되었다. 이러한 결점을 해결한 것이 복판 위에 추도를 꽂지 않은 십자로였다. 원래 십자로는 범(帆)을 오르고 내리기 위한 작업 장소였다. 그러나 범주를 눕히고 세우는 통로를 전투 때 개방해 놓음으로써 총통 발사 때 분출된 화염을 신속히 배출하는 굴뚝의 역할을 할 수 있게 했다.

이순신은 전투요원의 전투능력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거북선의 구조를 3분하여 운용되도록 했다. 즉 1층인 선체는 군량ㆍ무기창고와 군졸의 침실로, 2층인 갑판은 노군과 사수의 전투장소로, 3층인 상갑판은 포수들의 전투장소로 운용했다. 이순신이 거북선을 돌격선으로 운용한 결과 그 전술적 효용성은 다음과 같이 나타났다.

“거북선 제도는 배 위에 큰 판자를 덮고, 판자 위에는 십자 모양의 작은 길을 두어 사람이 다니도록 하고 나머지는 錐刀를 꽂아 사방에 발붙일 곳이 없게 하였다. …… 銃穴이 좌우 각각 6곳으로 큰 탄환을 쏜다. 적을 만나면 띠를 엮어 위를 덮어 錐刀를 가리니, 먼저 온 적이 배에 오르려고 하면 추도에 빠지고, 뒤따라온 왜선이 포위하려 하면 일시에 총통을 발사하여 향하는 곳마다 적선을 깨뜨리니, 크고 작은 해전에서 공을 거둔 것이 매우 많았다.”

그러나 속도향상을 위해 판옥선보다 선체를 작게 만들 수밖에 없었던 거북선은 판옥의 측면[현측]을 낮추게 됨으로써 전투 시 활쏘기에 불편한 단점이 노출되었다. 이것은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