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메뉴 바로가기 본문기사 바로가기

사람&단체

[사람&단체]“봉사로 삶의 의미 되새겨요”

이발사 이덕수 씨 가족
작성2019년 05월[Vol.74] 조회371

봉사가 어려운 건 아니에요. 마음이 내키면 하면 되는데. 말이 봉사지, 얻는 것이 훨씬 많은 일입니다.”

봉사가 몸에 밴 사람 특유의 덤덤함이 묻어나는 이덕수(70) . 40년간 봉사활동을 해온 이발사다.

아내 유정희(64), 아들 이태곤(42), 며느리 김연옥(36) 씨는 그의 봉사 동료. 환한 기운을 내뿜는 이덕수 씨 가족을 만났다.

 

이발 경력 50년에 봉사 40

2007년부터 이덕수 씨 가족이 이발 봉사를 해온 양산 성요셉의 집. 한창 이발에 열중하고 있는 이 씨를 만났다. 성요셉의 집은 뇌졸중과 치매 등 중증 어르신들이 생활하는 곳이다. 이 씨 가족은 매달 이곳을 찾는다.

잘 계셨어요?”, “편하십니까?”, “괜찮지요?” 등 어르신들 안부와 헤어스타일을 챙기는 이 씨. 그의 봉사에는 가족 외에도 이발사, 미용사 등 7명이 함께한다. 양산시동부이용지부 회원들이다. 가족과 단출하게 다니다 2005년부터 이용지부장을 맡으면서 봉사회를 만들었다. 10여 명의 회원들은 하루 100여 명의 머리를 손질한다. 그간 삼성복지선교센터, 새웅상요양병원, 혜인요양병원, 신세계요양병원 등 여러 곳에서 봉사활동을 펼쳤다. 성요셉의 집은 그중 한 곳이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 환자들은 10분 정도 걸리는 시간에 대소변을 보기도 하고, 아픈 데가 탈이나 힘들어 하기도 한다. 아예 앉지 못해 침상에 누워있는 환자의 머리를 손질할 때도 있다. 이발 경력 50년에 봉사 경력 40년이라는 이 씨도 때론 진땀을 흘릴 정도다.

 


 

나누어서 좋고, 함께해서 좋고

가진 것이 이발 기술뿐이니, 그걸로 나눠야지요. 필요로 하는 분들이 있으니 좋지요. 할 수 있는 걸로 나누고 삽니다. 큰 돈 드는 것도 아니고.”

젊은 시절 생계용으로 이발 기술을 배웠던 이 씨. 이발소를 차리기까지 10년이 걸렸다. 1979덕수이용원을 개업하면서 본격적인 봉사를 시작했다. “어찌어찌 하다 보니, 이발 봉사가 생활이 됐다는 이 씨의 봉사일지는 사실 이보다 앞섰다.

“1974년 울주에서 일할 때 단골손님이 몸이 아파 집에까지 와 달라 부탁했어요. 거절할 수가 없었죠. 너무 고마워하더라고요. 그 일이 계기가 됐어요.”

이렇게 몸이 불편한 어르신이나 장애인을 찾아가는 봉사가 시작됐다. 아내 유정희 씨도 자연스럽게 동참했다.

 

 

이발도 봉사도 아버지는 대선배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다니던 아들 태곤 씨도 이발사가 됐다. 봉사도 대물림됐다. “이발도, 봉사도 아버지는 대선배라고 말하는 그는 부모님께 배우는 것이 많단다. 며느리 연옥 씨는 결혼 전부터 봉사에 참여했다. 그러다 시아버지의 권유로 아예 미용사가 됐다.

봉사가 어떤 의미냐?” 물었더니 태곤 씨 부부는 이구동성으로 좋다고 대답한다. “뭐가 좋으냐?”고 되물으니, 태곤 씨의 대답이 묵직하다. “인생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노인이 될 나의 미래와 늙어가는 부모님도 떠올리지요. 삶의 의미를 자꾸 되새깁니다. 울컥할 때도 많고요.”

이덕수 씨는 봉사를 희망하는 이들에게 이발 기술을 가르치기도 한다. 봉사단원 박진표(44) 씨와 김효진(48), 강승아(49) 씨가 그의 제자들이다.

인연이 닿아 봉사를 함께하는 회원들인 김미영(41), 이두선(41), 박춘희(52), 황미정(55) 씨는 하나같이 모두 고마운 사람들이라며 이 씨는 엄지를 척 든다.

덕수이용원 055)366-1979

 

 

 

황숙경 기자 사진 이윤상 작가

TOP 방문자 통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