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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특집]‘용=권력’ 금관가야의 국제성 입증하는 유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668호 ‘용무늬 금동허리띠’

 



지난 3, 2012년 김해 대성동고분군(사적 제341) 88호분에서 출토된 용무늬 금동허리띠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668호로 지정돼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2013년 가야유적 발굴이 본격화되면서 8건의 유물이 보물로 지정됐지만, 도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다.

대성동고분군은 금관가야(1~6세기 초)의 왕 묘역이다. 현재 95호분까지 발굴됐는데, 88호분은 4세기에 조성된 대형 덧널무덤(목곽묘·木槨墓)이다. 규모와 부장품으로 보아 금관가야의 왕 또는 왕족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출토된 허리띠가 무덤 주인공 주변에서 흩어진 채 발견된 것으로 미뤄 허리띠를 두른 채 부장된 것으로 보고 있다.

금동허리띠는 2세기 말부터 4세기 무렵까지 중국에서 제작돼 동아시아에서 크게 유행했던 장신구다. 지배층의 권력을 상징하는 위세품(威勢品)이자, 중국과의 교섭을 통해 입수한 선진 물품이어서 금관가야의 위상과 국제성을 증명하는 지난 3, 2012년 김해 대성동고분군(사적 제341) 88호분에서 출토된 용무늬 금동허리띠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668호로 지정돼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2013년 가야유적 발굴이 본격화되면서 8건의 유물이 보물로 지정됐지만, 도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다.

대성동고분군은 금관가야(1~6세기 초)의 왕 묘역이다. 현재 95호분까지 발굴됐는데, 88호분은 4세기에 조성된 대형 덧널무덤(목곽묘·木槨墓)이다. 규모와 부장품으로 보아 금관가야의 왕 또는 왕족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출토된 허리띠가 무덤 주인공 주변에서 흩어진 채 발견된 것으로 미뤄 허리띠를 두른 채 부장된 것으로 보고 있다.

 

  


 

금동허리띠는 2세기 말부터 4세기 무렵까지 중국에서 제작돼 동아시아에서 크게 유행했던 장신구다. 지배층의 권력을 상징하는 위세품(威勢品)이자, 중국과의 교섭을 통해 입수한 선진 물품이어서 금관가야의 위상과 국제성을 증명하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88호분 금동허리띠는 끝장식판 1점과 드리개 3점이다. 가로 8길이의 끝장식판은 용의 전신과 또 다른 용의 머리가 마주보도록 표현돼 있다. 판을 도안대로 오려내는 투조기법과 금속에 문양을 새기는 조금기법으로 만들어졌다.

이 금동허리띠의 용무늬는 고대 한반도 남부에서 출토된 용무늬 유물로는 가장 빠른 시기의 것이어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1~3세기 한반도 남부에서는 주로 호랑이나 말 모양의 허리띠 고리 장신구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88호분의 금동허리띠를 통해 4세기에 이미 용이 권력을 상징하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 고분군 내 소재한 김해 대성동고분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대성동고분박물관에는 지난해 10월 보물 제2081~2083호로 지정된 김해 대성동 76호분 출토 목걸이, 김해 양동리 270호분 출토 목걸이, 김해 양동리 322호분 출토 목걸이 등 목걸이 3점도 전시돼 있다.

발굴자인 송원영 대성동고분박물관장은 금동허리띠는 보물로 지정된 목걸이와 비교하면 역사적으로 훨씬 희귀한 유물이라며 당시 중국과 교류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중요한 자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 때문에 급이 낮은 도 지정 문화재가 돼 아쉽다. 하지만 가야유물에 자부심을 갖기에는 충분하다박물관으로 많이 찾아오셔서 역사의 향기를 느껴보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황숙경  사진 이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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