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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

[문화의 향기]아리랑 에너지 폭발! 밀양 비보이(B-boy) 장 빈

춤에도 국가대표가 있다고? 브레이킹 댄스(스트리트 댄스)2024년 파리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돼 댄스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밀양 비보이(B-boy·브레이킹 댄스 추는 남성) 장 빈 씨와 함께 <경남공감>이 브레이킹 강국 대한민국의 올림픽 출격을 기원한다.

김미영  사진 김정민


서태지 춤에 빠진 소년, 비보이 꿈꿔

 

밀양에 있는 예술공방 더클래시(The classy)’에서 비보이 장 빈 씨를 만났다.

그는 지난해 경남도청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경남민예총 주관 청년예술인상의 영예를 안았다. 장 씨는 초등학생 시절 서태지와 아이들을 보고 춤에 빠져버렸어요라며 운을 뗀다. 비보이의 꿈을 키워가던 소년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돌연 학업 중단을 선언했다. “온통 춤 생각뿐이었고, 수업 시간이 아까웠어요. 오로지 춤을 위한 선택이었죠라며 자퇴할 당시를 회상한다. 18세 소년으로 다시 시간을 돌린대도 주저 없이 같은 선택을 할 거라 말한다.

 

 

혹독한 댄서의 삶, 전문 비보이로 성장

경남권에서 춤 좀 춘다던 장 씨는 상경 후, 곧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깨달았다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대, 서울과 지방의 격차는 생각보다 컸다. 비디오테이프·뮤직비디오를 스승 삼아 꿈을 키워나가던 중 오디션에 합격해 당시 최고로 꼽히던 비보이팀에 합류하게 됐다. “제가 합격할 실력이 아닌 걸 알았죠. 오디션 시간이 저녁 7시였는데 4시간 전부터 가서 연습했어요. 그 열정과 간절함을 보시고 뽑아주신 듯해요라며 겸손하게 말한다. 그는 하고 싶을 때만 하는 것은 아마추어, 하기 싫어도 하는 것이 프로라는 말을 되뇌며 뜨겁고 격렬하게 투쟁을 이어갔다. 비인기 직종인 댄서의 혹독한 삶은 그를 전문 비보이로 단련시켰다.

그가 속한 팀은 국내외 대회를 휩쓸었고, 한국 대표로 세계무대를 밟는 영광을 누렸다. 그러나 장 씨는 군 문제로 5년여 치열했던 서울 생활을 접게 된다.

 

 

COME BACK 밀양, 아리랑을 만난 비보이

고향 밀양에서 산업 기능 요원으로 복무하며 익힌 기술은 안정된 삶을 가져왔지만, 춤이 중심이 아닌 그의 삶은 의미가 없었다. 춤 동료들과 의기투합해 2009더클래시(The classy)’를 만들고, 지역 행사·자유학기제 교육·전국 비보이 대회 개최 등 밀양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저변확대에 나섰다.

그는 지역을 이야기하는 춤을 추고 싶다. 밀양 아리랑과 비보이를 결합한 콘텐츠가 만들어진 이유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아라리가 났네. 빠른 리듬의 밀양 아리랑이 비보이와 잘 어울려요. 아리랑이 담고 있는 의미 중 흘러간다봐달라는 가사가 브레이킹 댄스 정신과 일맥상통해요.” 지역 문화와 상생할 수 있는 접점을 찾기 위한 장 씨의 여정은 진행형이다.

 

 

세계 대회 제패할 비보이·비걸 꿈나무 양성

비보이 복장으로 갈아입은 장 씨가 화려한 브레이킹 댄스를 선보인다. 뭔지 모르지만 리스펙트(Respect·존중)~!”가 절로 나오게 하는 폭발적인 힘이 있다. 머리가 땅에 닿는가 싶더니 물구나무 포즈를 취하고, 어지러울 정도로 빙글빙글 도는 고난도 동작이 이어진다. “아직도 이라면 취미에 그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에요.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할 겁니다.”

서른 중반, 매일 4시간씩 춤을 추는 그에게 꿈을 물었다. ‘더클래시(The classy)’와 함께 비보이·비걸 꿈나무를 양성, 세계 대회를 제패하는 것이란다. 예술 경영가의 면모를 동시에 갖춘 그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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