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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민의 소리

[도민의 소리]다하지 못한 말, 아들이 쓰는 아빠의 유언장

우리 아빠는 내가 아홉 살 때, 마흔둘이라는 젊은 나이에 하늘의 별이 되었다. 가족 모두에게, 당사자인 아빠에게도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먼 길을 떠나야 했던 아빠는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마흔하나 아들, 이제 두 아이의 아빠인 내가 32년 전 아빠의 유언을 대신 남겨본다.

 

승원엄마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기어이 찾아오고야 말았구려. 아이들이 아직 어린데 무거운 짐을 홀로 지게 해놓고 무심하게 떠나버려서 미안하오. 재산이라도 많이 남겨두었다면 좋았겠지만 땅 팔고, 소 팔아도 빚 갚고 나면 손에 남는 건 얼마 안 되지 싶소. 도시 나가 집이라도 한 채 장만할 정도만 돼도 사는 게 좀 나을텐데. 당신에게 버겁기만 한 인생길이겠지만, 없는 집에 시집와서 여지껏 살림을 잘 꾸려온 당신이라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테니 두려워 하지 말고 세상과 당당히 맞서보길 바라오.

 

궂은 날에는 구름이 되고 맑은 날에는 해가 되고 밤에는 흐르는 달이 되어 당신 곁에 늘 머물러 있으리다. 하늘에 구름이, 해와 달이, 낙엽을 날리는 바람이 나란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소. 나 떠난 후 너무 오랫동안 슬퍼하지는 말아요.

 

은정아, 희정아, 승원아! 너희들이 자라는 모습을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 아쉽고 미안하구나. 아빠는 너희 곁을 일찍 떠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세상이 너희들을 버린 것은 아니란다.

홀로 남겨진 네 엄마를 잘 부탁한단다.

 

아빠도 너희들이 자라는 모습을, 시집 장가가는 모습을, 아들 딸 낳고 오순도순 살아가는 모습을 그토록 보고 싶었단다. 너희들의 모든 추억 속에서 아빠라는 존재는 남아 있지 않을테지만 저 먼 하늘에서 우리 가족의 삶을 응원하고 가족의 안녕을 위해 신께 기도하고 있으마. 살아 있는 동안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말, 여보, 은정, 희정, 승원아! 사랑한다.

- 저 멀리에서 아빠가 -


                                                                                     이승원(김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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