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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민의 소리

[도민의 소리]엄마가 우리 집에 오셨다

재작년에 90세 치매에 걸린 친정엄마가 남해 우리 집에 오셨다.

오빠 집에 계시다가 작은 언니가 모시고 있었는데, 자꾸만 집을 나가셔서 더 이상 엄마를 모시기 힘들다고 요양원에 보내드리자고 한 것을 남편이 모시고 왔다. 남해는 공기도 좋고 시골이라 아파트처럼 답답하지 않아서 나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결정했다. 남해 오시면 엄마 치매도 좋아지고 마당 있는 집이라 운동도 하시고, 여러 가지로 좋을 것 같았다.

우리 집은 우리 부부만 살 거라고 25평에 방 둘, 화장실 하나로 최대한 건축비를 아껴서 지은 집이다. 남편이 서재로 쓰던 방을 엄마에게 내어 드리고, 엄마가 편히 사용할 수 있도록 편백나무 침대를 만들어 드렸다.

남해 오신 첫 날 엄마는 방에다가 대변을 보고 어쩔 줄 몰라 하셨다. 환경이 바뀌면서 심리적으로 불안하셨나 보다. 식사를 하셨는데도 안 드셨다면서 언제 나에게 밥을 줬느냐고 화도 내셨다. 이런 일은 시작에 불과했다.

우리 엄마는 요즘 같으면 미처 시집도 안 갔을 서른 살에 4남매를 둔 청상과부가 됐다. 20살에 아버지와 결혼해서 10년을 사셨다고 한다. 교직에 있던 아버지가 사업을 한다고 부산으로 가신 지 얼마 안 돼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단다. 막내인 나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버지 장례식에도 못 가셨다고 한다.

엄마는 어린 4남매를 어떻게 키울까하는 생각에 제대로 슬퍼할 시간도 없이 장사도 하고 직장도 다니셨다. 우리 엄마는 슈퍼우먼이었다. 지금은 사회복지가 잘 갖춰져 한부모 가정 혜택도 있는데, 그 시절은 젊은 여자 혼자서 아이들을 데리고 살기에는 너무 많이 힘드셨을 것이다. 부지런한 성품대로 열심히 사시면서 억척스럽게 우리들을 키워내셨다.

엄마는 치매에 걸려도 그 부지런함은 여전했다. 우리 집에 오시고 제일 문제는 화장실이었다. 우리 부부만 살아서 화장실을 한 개만 만들었는데 엄마가 오시면서 화장실은 엄마의 전용 공간이 되었다. 한 번 들어가시면 나오실 줄을 모른다. 도대체 뭘 하시는지 물소리는 계속 난다. 문을 열어보면 세면대 물을 틀어놓고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적시고 계신다. 자식들 키운다고 남자처럼 사신 엄마가 치매와 함께 여자로 다시 태어나는 것 같다. 엄마가 오시고 머리빗이 세 개나 이가 나가고 부러졌다.

엄마는 귀를 다쳐서 작은 소리는 전혀 듣지 못하신다. 큰소리를 해도 입모양으로 대충 알아들으신다. 같이 살면서 말이 안 통하니까 더 힘든 것 같다. 들리지도 않는데 TV는 하루 종일 틀어 놓으신다.

퇴근하고 집에 가면 내방은 엄마의 스타일로 완전히 바뀌어 있다. 걸 곳만 있으면 모든 곳이 옷걸이로 사용된다. 방문 손잡이, 냉장고 손잡이, 커튼 줄 등등. 냉장고에 넣어둔 배추가 냉동실에 꽁꽁 얼어 있기도 한다. 내가 직장에 나가고 없으면 엄마는 내방부터 시작해서 냉장고, 싱크대 이곳저곳을 뒤지신다고 한다. 남편이 왜 그러시냐고 물어보면 그냥 궁금해서 그러신단다.

내방 화장대에 넣어둔 손 소독제를 로션인 줄 알고 온몸에 바르시기도 하고 어떤 날은 내 결혼반지가 엄마 손에서 반짝거리기도 한다. 뒤뜰에 오골계 5마리를 키우는데, 닭이 못 먹는 것까지 주셔서 닭장 대청소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요즘은 어르신용 팬티 기저귀를 입고 계신다. 화장실 가는 도중에 소변을 줄줄 흘리시기 때문이다. 착한 치매라고 하지만, 엄마를 모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말수가 없는 남편도 엄마하고 함께 있는 시간이 힘이 드는지 한 번씩 혼자서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오곤 한다.

우리 집에 오셔서 건강도 많이 좋아지시고 식사도 잘하시는데, 젊어서부터 워낙 부지런하셨던 분이라 가만히 계시지 않아서 모시기 더 힘든 것 같다. 그래도 딸로서 바람이 있다. 엄마가 요양원에 안 가시고 우리 집에 계속 계시기를. 그리고 주무시는 중에 하늘나라로 편히 가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변복자 (남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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