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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민의 소리

[도민의 소리]어느 할아버지의 선물

정년퇴직 후 인생의 여정을 추억으로 만들기 위해 나는 창녕의 조용한 시골마을로 내려왔다. 조그마한 텃밭과 과일나무를 가꾸며 아내와 함께 전원생활을 만끽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창문을 열었는데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 한 분이 대문 앞에 서 계셨다.

사람 있는기요?”

이른 아침이라 주섬주섬 옷을 여미고 나가 문을 열었는데 전혀 모르는 분이셨다.

교수님 내가 누군지 몰라요?”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어르신이 기억나지 않아 혹시 잘못 오신 게 아닌지 물었다. “교수님께 지난날의 은혜를 갚으려고 왔어요.”

5년 전 이 마을회관에 의료 봉사활동을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내게 진료를 받았다고 하셨다. 그러고 보니 한 쪽 눈 상태가 좋지 않아 부산에 있는 대학병원을 추천해 드렸던 기억이 났다. 덕분에 눈 치료를 잘하고 있어 고마운 마음에 여러 번 찾아왔었다고 하셨다. 지금은 어떠시냐고 여쭤보니 아직도 가끔 나무가 두 개로 보인다고 하셨다.

어르신, 노인이 되면 젊은 사람과는 다르게 몸도 고장이 납니다. 그러니 너무 신경 쓰지 마시고 마음 편하게 생활하시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추운데 들어오셔서 차라도 한 잔 하고 가시라고 했는데 농촌 일이 바쁘다며 손사래를 치셨다. 헛걸음 하게 한 것도 죄송한데, 어르신은 이제야 찾아 온 것이 미안하다며 직접 농사지은 양파와 마늘 자루를 내미시는 게 아닌가. 도저히 그냥 받을 수 없어 가족들과 같이 식사라도 하시라고 돈을 드렸더니, “내가 이 돈 받을 사람이 아니다라며 서둘러 돌아가셨다.

가시는 뒷모습을 보니 불현듯 어머니가 생각났다. 어렸을 적 나도 시골에서 나고 자랐는데 어머니께서는 어려운 살림에도 불구하고 아무 조건 없이 이웃에게 양식과 채소 등을 나눠주시곤 했다.

도시에 비하면 시골은 아직도 낡고 모든 것이 어렵다. 하지만 감사함은 갚고 마음을 나누는 어르신들의 지혜가 아직 남아있음을 어르신을 통해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다. 값으론 산정할 수 없는 고귀한 선물이라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할아버지께 드릴 작은 선물을 가지고 찾아가 몰래 집 마루에 두고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어찌나 마음이 좋은지, 맑고 상쾌한 공기마저 감사하게 느껴졌다.

코로나로 모두가 어려운 시기다. 이럴 때일수록 이웃과의 감사함을 나눌 수 있는 마음을 잃지 말아야겠다. 어르신의 만수무강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김덕훈(창녕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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