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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민의 소리

[도민의 소리]마산 지하련의 집과 문학세계

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호동에는 용마 공원이라고 불리는 작은 산이 있다.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옛 마산 시내가 훤히 보인다. 산 아래쪽으로 정비된 다리를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무성한 벚나무들과 근처 주민이 일궈놓은 화전(花田), 그리고 오래된 집 한 채가 나온다. 얼마나 세월을 비껴갔는지도 모를 만큼 외롭게 홀로 낡아가는 집이다.

1930년대에 지어졌다는 이 집은 당대에는 흔하지 않던 2층 고급문화주택이다. 외부는 일본식 가옥과 서양 주택의 모습을 닮았고, 부엌 쪽에 천창을 뚫어서 빛을 유입시키는 건축양식을 취하고 있다. 아쉽게도 지금은 방 일부만 보존돼 있고 나머지는 화재로 소실됐다. 굳게 잠긴 대문 뒤로 전혀 관리되지 못한 채 남겨져 있다.

이 저택의 옛 주인은 일제 강점기와 해방기에 문인으로 활동했던 지하련(池河蓮·1912~?)이라는 소설가다. 호적상의 본명은 이숙희, 소설을 쓰기 전에는 이현욱이라는 이름으로 문단 활동을 했다. 경남 거창에서 태어나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그는 당대 여성으로는 드물게 일본에서 유학했고, 귀국 후 가족이 있는 마산으로 돌아왔다. 대지주이면서도 사회주의 운동가였던 아버지와 오빠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다. 지하련은 폐결핵 치료를 위해 마산으로 요양 온 시인이자 평론가, 카프(KAFF·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서기장으로 잘 알려진 임화와 결혼했다. 사상적 동지이자 연인으로 지냈다고 전해진다. 해방 후, 이데올로기 탄압을 피해 월북한 임화를 찾으러 북으로 간 후 그의 행적도 묘연해졌다.

지하련은 8편의 단편을 통해 사소설(에세이)의 묘한 흐름과 주인공 내면의 심리, 주변 인물과의 생활에 대한 섬세한 관찰을 보여준다. 특히 결핵 투병 중 마산 요양 시절의 체험을 소재로 한 소설 <체향초>에는 지하련 주택이 배경으로 나온다.

 

사흘재 되는 날 아츰, 끝내 산호리로 옴기게 했든 것이다. (중략) 산호리는 조용해서 거처하기 가장 적당하다는 (중략) 지금은 이렇게 시가지와 떠러진 산 밑에서 나무와 김생들을 기르고 날을 보내는 셈이다. (중략) 나무와 꽃이 욱어지고, 양과 도야지와 닭들이 살고 있는 양지바른 산호리, 그 축사와 같은 적은 집에 살고 있는 얼골 흰 오라버니를 잊을 수는 없게 되었다.’(<체향초> )

 

지하련 주택 옆에는 항상 밭을 가꾸는 사람이 있었는데 <체향초> 속 오라버니가 나무를 키우던 온실이 그 자리쯤이었을까. 2층 방에서 훤하게 보였던 마산 앞 바다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제 이런 이야기들도 오래된 저 집처럼 뒤돌아서면 잊히겠지만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의 집과 그의 소설은 연꽃처럼 아름다웠다.


김주영 명예기자(창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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