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차 출전

주요현황

6차출전 해전현황
전투명 일시 장소 전과
제2차 당항포해전 1594. 3. 3 ~ 3. 5 고성군 회화면 당항포 적선 31척 격파

전투개요

이순신은 병력 증강에 전력을 다하는 한편, 가장 중요한 정보활동을 철저히 하였다.
이순신은 어느 때라도 왜선을 멀리서부터 살펴서 즉각 보고하라고 했다. 통제사로서 계속 머물러 있는 동안 각처의 망대에는 장령을 파견하여 적정을 정찰하도록 하고, 수로의 요충지에는 복병장을 배치하였다.
이러는 동안 한 해 겨울을 지난 1594년 2월부터는 지난 날, 이순신의 위력에 눌려 바다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던 왜선들이 차차 움직이기 시작하여 진해·고성 등지를 마음대로 출입하면서 민가를 불사르고 살인을 하는 등 온갖 행패를 저지르고 있었다.
상황도(제2차 당항포해전)

이와 같은 왜선의 동향을 알게 된 경상감사 한효순(韓孝純)의 보고에 의하여 조정에서는 2월 1일, ‘3도의 수군을 지휘하여 적을 무찌르’라는 유서를 내렸다.
이처럼 왜선에 대한 공격을 명령하는가 하면, 다시 2월 8일에는 도원수 권율로부터 명나라의 심유경이 벌써 왜적들에게 화친을 청하였다는 글을 받는 등 이런 때에 공격을 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화친으로 말미암아 공격을 중단해야 할 것인지를 통제사 이순신으로서는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침착하게 이미 배치된 망장(望將 : 척후장)과 복병장을 통하여 들어오는 보고를 심중히 검토하였다. 그리고 왜선들이 춘원포와 소소포 등지에 출현한다는 보고를 들었다.
이에 이순신은 원균과 이억기 등에게 출전을 지시하는 한편, 순변사 이빈(李殯)에게도 전의 약속대로 많은 군사들을 거느리고 육지로 올라간 왜병들을 모조리 무찔러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하였다. 다시 말해서 수륙으로 협공한다는 것이었다.

침착하게 출전 준비를 하고 있던 이순신은 3월 3일에 척후장에게 적선 30여 척이 당항포와 오리량으로 향하고 있다는 급보를 받았다.
이때, 이순신은 3도의 모든 수군을 한산도 앞바다에 집결하게 하여 어둠을 타서 몰래 출전을 단행하였다. 왜군들에게 함대이동을 은밀하게 함으로써 그들이 도망하기 전에 전멸시키는 것이었다.
모든 전선을 거느린 이순신은 견내량을 통과하여 이날 밤 10시경 지도(紙島)에 이르러 일단 휴식하면서 새로운 계획을 강구하고, 3월 4일 밤에 다시 출항하였다.
이때 왜선 10척이 진해(鎭海) 선창에서 기슭을 따라 출항을 하고 있었다. 이를 발견한 어영담(魚泳潭)이 거느린 경쾌선을 일시에 좌우에서 협공을 가하여 6척은 읍전포(邑前浦)에서, 2척은 어선포(於善浦)에서, 나머지 5척은 자구미포(紫仇味浦)에서 각각 빈 배만을 남김없이 불태워버렸다. 왜병들은 배를 버리고 산으로 도주했기 때문에 사살하지 못했다.

이때, 당항포에 머무르고 있던 왜선 21척은 그들의 모든 전선들이 불타고 있는 연기를 바라보고는 모두 상륙하여 육전으로 대항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이에 이순신은 왜선들이 도망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당항포 포구를 가로막고 밤을 지냈다.

다음 5일에는 어영담이 거느린 경쾌선이 포구 안으로 돌진하였으나, 왜병들은 밤을 이용하여 모두 도망치고 빈 배만이 남아 있었다. 때문에 매어 둔 빈 배 21척만을 불태워버렸다.
이리하여 이 당항포 해전은 포성을 올리지 않은 채 끝난 것이었으나, 이순신은 모든 전선을 집결하게 하여 포성을 울리면서 동서로 진형을 바꾸며 대대적인 공격을 전개할 것 같은 기세를 보였으며, 이로 말미암아 영등포·장문포·제포·웅천·안골포·가덕·천성 등지의 왜병들은 겁을 내어 복병하고 있던 막사를 그들 손으로 불태우고, 굴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경상우수사 원균은 이와 같은 전공을 모두 경상도 수군만의 것으로 보고를 올렸기 때문에 진중의 여러 장령들은 불평이 많았다
당항포전경 당항포전경

이를 알게 된 이순신은 다시금 상세하게 각 도별로 전공이 있는 장령들의 명단을 작성하고, 불태워버린 왜적선 수를 장계하여 그러한 불평을 무마하였으며, 왜적선 가운데서 꺼내 온 의복과 양식 등은 군사들에게 상으로 각각 나누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