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선(1592)

거북선(1592)

거북선은 1592년(임진년) 임진왜란에서 사용되어 큰 위력을 발휘했는데, 그 구조와 성능에 대한 기록을 펴보면 대략 아래와 같다.

장차 왜적의 침입을 염려해 따로 전선(戰船)을 만들었는데, 배 위를 둥그스름하게 판자로 덮고 그 위에 창칼을 꽂았다. 적군들이 배에 기어오르거나 뛰어내리면 창칼에 찔려 죽게 된다. 배의 앞에는 용두(龍斗)를 달고 그 용의 입을 통하여 대포알을 쏘았다. 뒤에는 거북꼬리를 달고 총구를 냈다. 배의 좌우에는 각각 6개의 대포구멍을 냈다. 거북배에는 돌격장이 타고 함대의 선봉이 되어 나아간다. 적이 에워싸고 덮치려하면 일시에 대포를 쏘아 가는 곳마다 휩쓸어 임진왜란에서 크게 공을 세웠다. 모습이 엎드린 거북과 같으므로‘거북배’라 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거북선의 구조에 대한 자세한 설계도나 치수는 전해오는 것이 없다. 다만 이순신장군의 <난중일기>와 장계(狀啓 ; 지방에 파견된 관원이 서신으로 임금에게 한 보고), 조카인 이분(李芬)의 행장과 몇 가지 단편적인 자료에서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을 따름이다.

거북선이라는 이름은 조선왕조 <태종실록>에 처음 나온다. 태종 13년 2월에 “왕이 임진나루를 지나가다가 거북배와 왜선으로 꾸민 배가 수전 연습을 하는 것을 보았다”라는 구절이 있다. 그러나 태종 때의 거북선은 평전선만이 있을 때였으므로 임진년의 거북선과는 그 구조가 달랐다고 보아야 한다.

<난중일기>에서는 임진년 2월 초파일에 “거북배에 쓸 돛감(帆布) 29필을 가져왔다”, 4월 초하루에는 “돛을 만들기 시작했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거북선에는 이물돛대와 한판돛대가 있다. 옛날에 삼베나 면포돛은 관선이나 싸움배에만 썼고 일반에서는 부들로 짠 돛을 달았다. 행선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바람이 불면 돛을 올리고 출발하는데, 도중에 바람이 적거나 행선을 서두를 때는 큰노를 걸고서 노질을 재촉하여 행선한다.

거북선에는 약 90명의 노젓는 군사가 있었다고 한다. 조선식 큰노 1척에 4명이 둘씩 마주 서서 젓고, 우두머리 1명이 더 붙어서 모두 5명이 젓게 된다. 전라좌수영 거북선에는 한쪽 뱃전에 8척의 노가 달려 있다.

1592년 임진왜란 초기에는 전라좌수영에 영(營) 거북선, 순천 거북선, 방답 거북선 등 3척이 있었으나, 정유재란 때는 1593년에 추가로 만든 거북배를 포함하여 모두 5척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