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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여행]엄천강 12仙界로 떠나는 봄나들이

작성2020년 04월[Vol.85] 조회276

 

화산(崋山)은 함양군 휴천면의 법화산(法崋山, 992.9m)을 말한다. 이 산을 주봉으로 지리산 휴천과 유림을 휘감고 흐르는 강이 엄천강이다. 화산십이곡(崋山十二曲)은 이 강변에 깃든 열두 구비 절경을 노래한 조선말의 선비 무산(武山) 강용하(姜龍夏, 1840~1908)의 오언율시다. 화산십이곡 시구(詩句)를 따라 봄나들이를 떠난다

 

용유담~함허정 25리 탐방길

지리산 두 물줄기가 함양땅 마천에서 만나 임천을 이루다가 용유담 협곡을 거치며 엄천강으로 세력을 키운다. 화산십이곡은 바로 용유담을 기점으로 수잠탄, 병담, 와룡대, 양화대, 오서, 한남진, 독립정터, 사량포, 칠리탄, 우계도, 함허정에 이르기까지 장장 25리에 이르는 굽이다. (), (), (), (), ()을 사열하며 선계의 여정을 풀어놓은 듯 몽환의 경치를 연출한다.

휴천면 모전마을 입구 용유교에서 바라보면 상류로 범상치 않은 계곡이 용틀임한다. 1곡 용유담(龍遊潭)이다. 계곡 좌우를 살펴보면 그 기괴함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풍화된 바위들과 깊이를 모를 시퍼런 수심, 바위마다 새겨진 다양한 글자들(용유동천, 경화대, 영귀대, 방장제일강산, 심진대) 사이로 우레 같은 물소리가 요동친다. 하얗게 솟은 바위들이 용의 비늘인 듯 출렁이는 모습은 영락없는 용의 놀이터다. 산중에 용궁이 숨어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용들의 놀이터산중 용궁 가는 길

계곡을 휘저은 용의 기세는 이내 평온을 되찾은 듯 수잠탄(水潛灘)에 이르러 한숨을 돌린다. 올망졸망한 돌들이 햇살바라기 하는 제2곡 수잠탄은 마치 산중의 섬처럼 신비와 여유를 겸비하고 있다. 이렇게 모인 강물은 널찍한 엄천강의 상류를 평온하게 적시며 흐른다.

때론 크고 작은 소를 만들며 무료함을 달래고 대해를 향한 푸른 꿈을 키우듯 강변 기암들과 어우러져 기예를 연마하는 의연함도 놓치지 않는다. 3곡 병담(屛潭)이 그곳이다. 무산 강용하는 그의 글에서 날카로운 바위는 층으로 쌓여 깎아지른 병풍 같고 그 사이 물결은 가랑비처럼 뿌옇게 뿜어져 나온다고 병담을 묘사했다.

문하마을 앞 화환정 진소를 가득채운 강물은 유영하는 용의 목마름을 채운다. 4곡 와룡대(臥龍臺). 강 가운데 떡하니 호화유람선 한 척이 정박하고 있는 듯하다. 문하마을 계곡의 큰 바위가 용의 형상인지라 구한말 고종 광무 10(1906) 강신영이 와룡대라 명하고 친구 8명과 계모임을 한 곳이라 전한다. 노송을 이고 진 바위가 진품이라 이곳을 지나던 일두 정여창과 탁영 김일손은 가히 사람이 살만한 곳이라 하여 가거동(可居洞)이라 명명했다. 신선이 금세라도 나타날 듯 바람마저 신령스럽다.

 

양화 모래톱과 오서 풍광 별천지

와룡대에 잠시 정박한 물줄기는 모래와 돌멩이들을 실은 채 급격히 북으로 향한다. 곧 장재동 물줄기와 합세하며 절경을 조각해 양화대(楊花臺)를 낳는다. 모래톱이 아름다운 제5곡 양화대는 햇살이 가득 스미는 급류면 절벽에 병풍을 둘러친 채 아름다운 산중 해변을 연출한다. 몽돌 사이로 계곡 물소리는 마치 파도같이 철썩거린다. 모래톱에 앉아 노송의 파라솔을 하사받자면 이 또한 선계가 아닐까 싶다.

6곡 오서(鰲嶼)는 새우등처럼 생긴 계곡이나 자라 오()자를 사용했다. 신화에 등장하는 신선을 지키는 자라를 인용할 만큼 별천지로 승화시킨 명승지다. 오언율시에도 삼신산은 바다 밖에 잠겨 있고 여기 섬 하나 있어 숨어 살만한데(중략) 그림 같은 풍경 속에 그대와 함께 독서하고파라고 읊었다. 이곳의 별스러운 풍광에서 세상을 초월한 은거의 삶이 스멀거리며 풍겨온다.

 

한남진·독립정터 거쳐 백로가 꿈에 드는 사량포

7곡인 한남진(漢南津)은 세종의 서자인 한남군 이어(1429~1459, 단종 복위 실패로 유배)의 이야기가 도드라진다. ()은 나루지만 아마도 이곳에 유배 온 한남군이 기거했던 지금의 한남마을을 지칭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오대를 비롯해 나박정 등 그와 연계된 유적들이 산재한 것으로 봐서 아마도 한남군에 대한 이곳 유생들의 사랑이 서린 곳이 아닌가 싶다.

강물은 다시 풍족하게 모여 잠시 기력을 집중한다. 지금은 도로 아래로 숨어 있지만 운서보 못 미쳐 제8곡 독립정(獨立亭)터를 만난다. 혼자만의 공간, 그곳이 지리산 선계라면 혼자인들 어떠하리. 이곳은 유량이 풍부해 물놀이 유원지로 인기가 많다.

운서보를 넘어선 물줄기는 이제 탄탄대로를 따라 하류 선계를 적신다. 그 오른편으로 소를 이루며 제9곡 사량포(師良浦)가 모래톱을 안고 있다. 강용하가 모래가 따뜻하여 백로가 깊은 꿈에 빠졌고, 산색도 맑아 나무도 빛난다고 노래한 곳이다. 벼랑 끝에는 칠리대(七里臺)라는 글자가 매달리듯 새겨져 있어 본격적인 다음 선계를 예고하고 있다. 쉬이 접근이 어려워 운서보에 앉아 그저 바라만 보니 안타깝다.

 

화산십이곡 명승길은 선계로 가는 행운길

후한 광무제의 벗인 엄자릉이 절강성 부춘산에 은거할 때, 동강에서 낚시하며 선경을 거닐었다는 칠리탄, 그 풍광이 엄천에도 살아 회생한다. 10곡 칠리탄(七里灘). 드넓은 모래밭이 예쁜 곳으로 신선놀음의 바빴던 일정을 쉬어가기에 충분하다.

선경의 기운을 따라가는 탐방은 제11곡 우계나루에 정박한다. 당나라 유종원이 영주로 귀양 갔을 때 앞 시내 이름을 우계(愚溪)로 바꾸고 스스로 어리석음을 자처했다는 유래를 안고 있다. 하지만 어리석다기보다 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하고 싶은 지혜가 아닌가 싶다.

동강마을과 상촌의 옥토를 적신 물줄기는 널찍한 자혜들판을 마당삼아 제12곡 함허정(涵虛亭)에서 고단한 그림자를 누인다. 화산십이곡 종착역인 함허정은 함양군수 최한우의 위민정신을 기려 그의 자손들이 지은 조선시대 누각으로, 25리의 노정을 마무리하는 곳이다.

이렇게 화산십이곡 명승길 따라 열두 신선을 만나러 가는 길은 선계로 들어가는 행운길이다. 수달래 피고 녹음 우거지는 엄천강은 지금 신선 을 맞을 준비가 한창이다.

 

 



·사진 이용호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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