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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경남역사

[아하! 경남역사]가야유산 기획⓭ 고인골(古人骨), 가야사람을 말하다

 

가야인의 머리를 주목하다

지난 927일 국립김해박물관은 특별한 학술대회를 열었다. ‘가야사람 풍습연구, 편두가 주제였다. 지금까지 가야사 학술대회는 문헌기록이 중심이었지만 이날은 가야인의 뼈 즉 인골(人骨) 특히 김해 예안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찌그러진 머리, ‘편두(褊頭)’에 이목이 쏠렸다. 더욱이 가야인골에서 확인된 특징적인 머리뼈에 대해 고고학, 인류학 전문가들의 논문 발표와 집중 토론이 오가는 장이 열렸다는 점에서 학계와 언론에서 주목을 받았다. 필자는 이날 가야고분과 순장인골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김해 예안리 고분군 고인골 대량 출토

김해시 대동면 예안리 고분군은 낙동강 하구에 위치한 가야유적이다. 가야 전기부터 가야 멸망 이후까지 금관가야인들이 바닷가에 조성한 대규모 무덤군이다. 1976년 이후 4차례 정밀발굴조사를 통해 4~7세기의 덧널무덤, 돌덧널무덤, 돌방무덤 등 200기 이상 발굴됐다.

2,000남짓한 좁은 면적이지만 시대가 서로 다른 무덤들이 서로 겹쳐져 있다. 이 덕분에 300여 년에 걸친 무덤과 유물의 변천과정을 파악할 수 있다. 고고학자들이 가야토기와 무덤에 연표를 붙일 수 있는 것도 예안리 고분군 덕분이다.

그런데 예안리 발굴의 최고 성과는 고인골에 있다. 고고학자들은 과거 사람들의 남긴 무덤과 유물을 통해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추적하고 추정한다. 그런데 정확한 정보는 인골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아쉽게도 산성이 강한 한국의 토양 특성상 고인골이 나오는 사례는 드물고 상태도 온전하지 않다.

그런데 예안리 고분군에서는 보존 상태가 완벽한 고인골이 무려 210구나 출토됐다. 뜻밖의 성과 덕에 가야사람의 모습을 비로소 알 수 있게 됐다. 예안리 고분군이 우리나라 고대 유적 중에서 유일하게 평민들의 무덤군이지만 사적(261)으로 지정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찌그러진 머리의 가야 여인

3세기 후반 중국의 역사서인 삼국지위서동이전 한조에는 어린 아이가 출생하면 곧 돌로 그 머리를 눌러서 납작하게 만들려하기 때문에, 지금 진한(?) 사람의 머리는 모두 납작하다(褊頭, 편두)라는 기록이 나온다. 변한(弁韓)을 설명하다 뜬금없이 진한이라 쓴 것을 실수로 본다면 가야의 전신인 변한에 편두풍습이 널리 성행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예안리 인골을 통해 문헌기록 속 편두(褊頭)의 실물이 확인됐다.

예안리 인골 210구 가운데 확실한 편두는 2, 거의 확실한 것도 2구 정도이다. 이들은 모두 4세기 덧널무덤에 매장됐고 5~6세의 유아를 제외하면 모두 성인 여성으로 밝혀졌다. 왜 머리를 납작하게 만들었는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고대 유라시아에서는 좁은 황금관을 쓰거나 우월한 신분의 상징으로 편두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예안리 고분군의 주인과 부장 유물로 보면 그런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오히려 바닷가 마을에서 제사를 주관하던 여성 주술사는 아니었을까?

가야인골, 가야를 말하다

1980~90년대의 고인골 연구는 형태분석 수준이었다. 성별, 나이, 질병 등이 밝혀졌고 무덤과 유물의 특징과 함께 다양한 고고학 연구로 이어져 많은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2000년대 분석과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고인골에 대한 새로운 연구가 가능해졌다. DNA 유전자 지도(Genome map)가 완성되면서 인골의 유전적 특징, 심지어 좋아하던 음식까지도 밝혀지고 있다.

최근 무려 39년 만에 김해 예안리 고분군에 대한 발굴조사가 다시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가야사람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써 내려가게 될는지 자못 기대된다.

 

후기 : 예안리 인골과 관련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하나 소개한다. 1970년대는 유적 발굴 시 인골이 더러 나와도 제대로 수습하지 않은 채 태워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당시 예안리 발굴조사자들도 엄청난 수의 인골을 놓고 과연 박물관으로 가져가야 할지를 두고 꽤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다행히 꼭 필요한 고고학 자료가 될 것을 확신한 조사자들이 박물관으로 무사히 옮겨놓았다. 가야를 연구하는 후배 고고학자로서 경의를 표한다.

 

김수환 경남도 가야문화유산과 학예연구사  사진 부산대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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