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던 나무에 영혼과 생명을 불어넣는 서각(書刻) 예술의 세계.
25년여 나무의 속도로 살아가며 서각의 맥을 잇는 명인을 만났다.
칼끝에서 피어나는 예술의 꽃, 오늘도 행복한 새김질은 계속된다.
칼끝에서 피어나는 예술, 서각
나무 향 그윽한 적요한 공방에 경쾌한 망치질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 소리에 맞춰 나무판 위 칼이 춤춘다. 칼끝에서 유려한 곡선을 뽐내는 관음보살상과 반야심경 270여 자가 선명하게 피어나고, 굽이친 나이테는 어느새 광배로 자리 잡았다.
“나무를 보고 작품 주제를 고르기도 하고 주제에 맞는 나무를 찾기도 하는데 이번 작품은 모든 게 맞아떨어졌어요.” 김덕진 작가는 거칠게 때로는 섬세하게 나무와 혼연일체가 되어 집중 또 집중한다. 아차 하는 순간 칼날이 헛나가 그동안의 수고가 물거품이 될 수 있어서다.
이처럼 나무·돌·금속·기와 등에 글자나 그림을 새겨 완성하는 예술 장르가 서각이다. 양각·음각·음평각·음양각·상감기법 등 다양한 새김질로 개성적인 칼맛을 내는 게 묘미다.
25년 서각의 길, 아로새긴 화양연화
손재주가 남달랐던 작가는 한 전시회에서 서각을 접하고 이끌리다시피 칼을 잡게 되었단다. 평범한 직장인에게 운명처럼 다가온 서각의 길, 25년 그가 걸어온 목흔(木痕)은 개인전 12회, 단체전 150여 회에 달하는 작품활동으로 대변된다.
“그냥 새기는 게 아닙니다. 글씨와 그것이 전하는 뜻, 내용을 모르면 본질적 의미의 서각이라 할 수 없습니다.” 여러 학문을 탐독하며 밤낮으로 뭘 새길지 고민하는 그의 열정은 다수의 자필자각(自筆自刻)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인생의 ‘화양연화(花樣年華·인생에서 아름답고 행복한 시절)’를 아로새긴 작품 하나하나에 이야기가 샘솟는다.
나이테와 옹이에 고스란히 밴 나무의 진실함을 사랑하는 사나이. 김 작가는 단단한 목질과 아름다운 나이테를 지닌 느티나무를 구하기 위해 전국 팔도 안 가본 곳이 없다. 그에게서 요즘 MZ세대들이 말하는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정신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술로 아름다운 행복 나눔
김 작가네 가훈은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선행을 쌓는 집 안에는 반드시 경사가 찾아온다)’이다.
한국예총이 인증한 한국예술문화명인(공예-전통각자조형화 부문)이기도 한 그는 경남예술나눔작가협회 회장으로서 문화나눔도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 한국화·서양화·조각·서각 등 10여 개 예술 분야 작가로 구성된 이 단체는 매년 회원전을 열어 예술로 나눔을 전한다. 전시 경비 일부는 경상남도 문화예술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진행한다.
백 가지 다른 서체로 ‘복(福)’자를 새김질한 ‘백복도(百福圖)’가 작가의 철학을 반영하는 듯하다. 한 화면에 상서로운 글자를 그림처럼 배치해 그 의미를 더욱 강조하여 좋은 기운을 전달하는 작품이다. 4월 23일부터 성산아트홀에서 열리는 경남예술나눔작가협회 회원전에서 서각 예술의 매력과 복된 기운을 전달받길 추천한다.
위치 창원시 의창구 북면 외감리 267-1
문의 010-2519-9213
글 김미영 사진 유근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