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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민의 소리

[도민의 소리]한여름 밤의 추억

여름이라는 말에는 피서와 휴가가 따라 다닌다. 휴가는 일상의 짐들을 다 내려놓고 어디론가 홀가분히 떠난다는 의미가 있어서, 누구에게나 기분 좋은 단어로 자리한다. 하지만 때론 그 휴가가 또 다른 노동으로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피서를 통해 휴가가 되어야 함에도, 수많은 준비와 뒷정리로 노동이 되기 때문이다. 요즘의 이런 피서 문화를 보면서, 내 어린 시절의 피서를 떠올려 본다.

내 고향은 앞으로는 경호강이 흐르고, 뒤로는 야트막한 산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는 산청이다. 어린 시절 여름을 떠올리면 경호강과 모깃불 그리고 대가족이 생각난다. 한여름 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면 할아버지를 제외한 온 식구들은 감나무 아래 평상으로 자리를 옮겼다. 모깃불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할머니는 부채질로 매캐한 연기를 피하게 해 주셨다. 입담이 좋으셨던 증조할머니께선 책을 워낙 즐겨 읽으셨고 이야기를 얼마나 실감나게 잘 해 주셨던지, 무서운 이야기를 하실 때는 할머니의 치마폭 안으로 파고들기도 했다. 난 할머니의 부채 바람과 증조할머니의 이야기 속에서 어느새 잠이 들곤 했다.

공직생활을 하신 아버지께서는 휴일 저녁이면 기타를 메고 우리 4남매를 데리고 강으로 나가셨다. 우리는 모두 팬티 바람으로 물속에 첨벙첨벙 뛰어 들어갔다. 강물은 낮의 열기를 받아서인지 그렇게 차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버지께서는 차례대로 4남매를 씻겨 주셨다. 목욕이 끝나고 자갈밭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서 밤하늘의 총총한 별빛을 보고 있으면, 설거지를 끝낸 엄마가 간단한 간식거리를 챙겨 들고 나오셨다. 엄마에게는 대가족 속의 시집살이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간식을 맛있게 먹고 나면, 우리는 아버지의 기타 반주로 ‘오빠 생각’, ‘반달’, ‘섬집 아기’ 등 동요를 합창했다.

지금도 별빛이 유난히도 초롱초롱했던 어릴 적 여름밤을 잊을 수 없다. 아름다운 여름밤의 풍경화를 그려 주신 증조모님, 조모님 모두 저 하늘의 별이 되셨지만 지금도 여름이면 그 유년의 밤풍경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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