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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교류

[기사교류]향수 부르는 가을의 상징 … 10월의 나무 감나무

  


 

추억이 주렁주렁, 가을의 상징

맑고 청명한 쪽빛 하늘과 주황색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감나무는 우리나라 가을을 상징한다. 주황색 방울같이 반짝이는 감이 소박한 가지 끝에 대롱대롱 매달리고 한두 잎 감잎이 남아 있는 그 풍경은, 감나무가 아니고서는 느껴 볼 수 없는 풍취가 아니겠는가.

삼복염천을 뒤로하고 퇴색한 초가집 뜰에 한 그루 감나무가 낡은 지붕 위에 우뚝 솟아서 하늘을 온통 주황색 열매로 덮으면, 추수를 마치고 풍요로운 겨울을 맞이하게 됐다는 대견한 느낌을 안겨 주기도 한다.

‘경의’와 ‘자애’, ‘소박함’의 꽃말을 가진 감나무는 과일나무에 앞서 가을의 화목(花木)으로, 한 폭의 살아있는 그림으로, 우리나라 농촌 생활의 온갖 풍정(風情)을 돋우어 준다.

필자가 살고 있는 지리산 자락에도 온 마을과 들판에 붉은 감들이 가득 차 있어 풍요롭기만 하다. 가을 들판에 누렇게 익어 가는 벼 이삭과 함께 우리의 마음을 넉넉하게 해준다. 감나무는 남녀노소 모두가 어린 시절의 추억이 녹아있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나무이기도 하다.

 

달디 단 ‘신의 식물’ 감(甘)

감나무는 낙엽 활엽 교목으로, 높이 15m에 이른다. 꽃은 암수한그루 또는 암수딴꽃을 이루며, 5~6월에 개화한다. 

새 가지 끝에 황백색으로 피고 잎겨드랑이에 달린다. 암꽃은 한 개씩 달리며 종 모양이고, 수꽃은 작고 3~5개씩 모여 달린다. 종 모양의 화통은 지름 1cm 미만으로 끝이 네 갈래로 갈라져 뒤로 젖혀진다.

감 열매는 난상 원형으로 황적색을 띠며 10월에 성숙한다. 종자는 짙은 갈색으로 납작한 장타원형이다. 감의 종류는 200여 종이 넘는다. 경남 진영의 단감, 청도의 반시, 산청의 고종시 등 여러 종류가 있다. 증식은 고욤나무에 접목으로 한다.

감나무의 학명 중 속명 ‘디오스피로스(Diospyros)’는 그리스어 ‘디오스(dios)’, 즉 ‘주피터’ 그리고 ‘곡물’이란 뜻을 지닌 ‘파이로스(pyros)’의 합성어이다. ‘신의 식물’이라 하여 서양에서는 오래전부터 감을 귀한 과일로 여겼다. 종소명 ‘가키(kaki)’는 일본어로 감나무(カキノキ)를 의미한다.

국어 어휘의 어원을 해석한 책 『동언고략』에서 감나무의 ‘감’은 ‘달 감(甘)’으로 홍시가 달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고 해석한다. 다른 이름으로는 ‘시자수(柿子樹)’, ‘돌감나무’, ‘산감나무’, ‘똘감나무’, ‘시수(柿樹)’, ‘유시자(油柿子)’가 있고, 제주도에서는 ‘감낭’이라고도 한다.

 

비손하고 소득도 올리는 대표 생활목

감나무는 오랫동안 우리와 밀접하게 살아온 생활목이기도 하다. 감은 대추, 밤과 함께 삼실과(三實果)라고 해서 빠짐없이 제사상에 올리는 생활 속 나무이다. 또 소득 작물로도 친숙하다.

감은 단감과 떫은 감으로 나누는데, 떫은 감의 껍질을 벗겨 말려서 곶감을 만든다. 곶감의 ‘곶’은 감을 꼬챙이에 꽂아서 말린 감을 말한다. 산청군 시천면 일원에는 고종 임금에게 진상했다는 ‘고종시(高宗枾)’라는 품종으로 곶감을 만들어 고소득을 올린다. 곶감 경매시설도 들어서 있으니 생산량이 어마어마함을 알 수 있다.

감은 감기설떡, 곶감에 술을 담근 시삽(柹澁) 등 다양한 먹거리는 물론 약으로도 활용한다. 한방에서는 딸꾹질 멈춤, 치질 출혈, 중풍, 고혈압에도 효능이 있는 것으로 본다. 남도 지방에서는 감물을 들여 입는 갈옷, 갈적삼(감물을 들인 저고리), 갈중이(감물을 들인 바지) 등 쓰임새가 다양하다.

그 옛날 종이가 귀하던 시절 시인 묵객들은 ‘시엽제시(柿葉題詩)’라 해서 단풍진 감잎에 시를 써서 주고받았다. 거기다 고목의 감나무는 자손의 창성과 득남을 비손하는 신앙의 나무이기도 했다. 여인들이 노란 감꽃으로 목걸이를 하고 다니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이 전해온다.


640년 이어진 효심, 남사예담촌 ‘최고령 감나무’

우리나라에는 유명한 3그루의 감나무가 있다. 산청 남사예담촌 ‘최고령 감나무’와 상주 소은리 ‘최초의 접목 감나무’, 의령 백곡리 ‘가장 크고 굵은 감나무’다.

‘최고령 감나무’는 한국에서 아름다운 마을 1호로 지정된 남사예담촌에 위풍당당 그 위용을 자랑하며 마을을 지키고 있다. 1986년에 세운 기념표석에는 ‘문효공경재선생수식시목(文孝公敬齋先生手植柿木)’이라고 적혀 있다.

경재 하연(河演, 1376∼1453)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다. 일찍 여읜 어머니가 특히 감을 좋아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좋은 감나무를 골라 일곱 살 때 심었다고 한다. 선생이 일곱 살 때는 고려 우왕 8년(1382)이므로 감나무의 수령은 올해로 637년째이다. 3~4년 된 감나무를 심었다 가정하더라도 640년은 된다. 명실공히 우리나라에서 최장수 어른 감나무다. 고목나무는 나이 측정이 어려운데, 이 나무는 역사의 기록이 뚜렷하므로 매우 가치가 있다.

일명 ‘하연 감나무’라고도 하는 남사예담촌 ‘최고령 감나무’에는 춥고 비바람이 거세면 도깨비가 나와서 지켜주었다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지금도 매년 감 수확을 하고 있다. 두 왕조에 걸쳐 자란 나무이니 수많은 사연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오늘날 산청 감의 원조라 불릴 만하다.

 

의령 백곡리 감나무 천연기념물 제492호 지정

‘최초의 접목 감나무’는 감 주산지인 경북 상주시 외남면 소은리에 있다. ‘하늘 아래 첫 감나무’라는 애칭을 갖고 있다. 수령 530년 정도로 고욤나무에 감나무를 접붙인 제일 오래된 접목나무로 알려져 있다. 아직도 한 해 4000여 개의 감을 생산하며 노익장을 자랑하고 있다.

‘가장 크고 굵은 감나무’는 의령군 정곡면 백곡리에 수령 500여 년 된 감나무이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감나무 천연기념물(제492호)이다. 높이 28m, 둘레 4m, 가지는 동서 4m, 남북 12m로 생물학적, 문화적, 경관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긴 세월 풍파 속에서도 꿋꿋한 생명력으로 마을을 지키며 장수하고 있다.

늦서리 내린 뒤까지 오래 매달려 있던 주홍빛 감잎이 저녁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봄에 꽃을 완상하고, 여름에 그늘의 멋을 즐기며, 가을엔 주홍빛 감을 우리에게 안겨주는 소박한 사랑을 담은 감나무가 존경스러운 계절이다. (정리 황숙경 기자) 

 

글·사진 나영학 한반도식물자원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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