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

유년시절

한성 마르내골(乾川洞)에서 태어난 이순신은 아버지가 벼슬을 하지 못했으므로 집안이 가난하였다. 때문에 살림이 어려워 외가가 있는 충남 아산 뱀밭마을(白岩里)로 이사를 가게 되고, 이곳이 이순신의 고향처럼 되었다.

이순신은 어린 시절에 여러 아이들과 더불어 놀았으며 그 중에서도 전쟁놀이를 즐겼고, 그 때마다 아이들은 이순신을 대장으로 올려 세웠다.
그리고 언제나 활과 화살을 즐겨 차고 다녔다. 마을에서 어른들이라 하더라도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게 되면, 곧장 바른 말을 했기 때문에 어른들도 이순신을 어렵게 여겼다. 그만큼 이순신은 어려서부터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지녔던 것이다.

한편 한글판 《충무공행장》에는 《충무공전서》의 행장과 다른 소년시절의 일화 두 가지가 실려 있다.

여덟살 되어서 원두밭에 가 외(참외)를 달라 하니 외 임자 아니 주거늘, 공이 이미 돌아와 말을 타고 외밭에 가 달리시니 외 임자 무수히 빌어서 그치고 그 후는 공이 가시기만 하면 외를 마주 드리더라. 또 이웃집 소경아이가 와서 청하여 가로되, 아무 집에 동아를 많이 심었으니 가 따오자 하거늘, 공이 그 소경아이를 이끌고 두어 방위를 돌아 동아 연 집으로 가는 체하고 도로 소경의 집으로 와서‘이것이 그 집이라’하고 그 아이를 지붕 위에 올라 동아를 다 딴 후 공이 버리고 먼저 오신데, 소경의 어미가 동아를 따는 줄 알고 바삐 나와 보니 제 자식이 지붕 위에 오뚝하니 앉았더라.

위의 이야기는 이순신이 소년시절부터 보여 왔던 협기와 지기 싫어하는 성격 등을 잘 나타내 준다.
이후 이순신은 나이가 들면서 학문을 하는 데에 있어서도 결코 소홀하거나 게을리 하지 않았다. 사대부 가문의 학풍에 따라 희신(羲臣)ㆍ요신(堯臣) 등 형제들과 함께 유학(儒學)을 공부했으며 뛰어난 자질을 보였다. 그의 문학적 자질과 깊이는 임진왜란 중에 쓴 《난중일기(亂中日記)》와 그 밖의 여러 한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