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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여행]소설가의 ‘지리산 대원사계곡길’ 답사기

작성2020년 05월[Vol.86] 조회247

 

 

유평주차장~대원사~유평마을 총 3.5km

자연이 주는 맛은 놀랄 만큼 경이롭다. 인간의 기본적인 미각이 짠맛, 신맛, 단맛, 쓴맛 그리고 우마미(umami)맛 등 다섯 가지라면, 자연의 맛은 마치 산사(山寺)에서 차려준 소박한 밥상처럼 기본 미각을 뛰어넘는 건강한 맛이라 할 수 있다. 그 자연의 진정한 맛과 멋을 느끼는 방법에 관하여 며칠을 고민하고 또 생각했다. 그건 이 땅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감염 질병으로 인해 유독 봄이 봄 같지도 않은 이때, 자연에서 일시적이나마 자유와 해방감을 느끼고 싶은 원초적인 욕망 때문이었다.

그랬다. 오랜 칩거 끝에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 지리산 대원사계곡길을 찾은 날은 벚꽃이 하나둘 질 무렵인 토요일 오후였다. 예년과 비교하면 찾는 이들이 턱없이 적었지만, 주말이라 이미 둘레길 탐방을 마치고 하산하는 사람들이 몇 있었다. 입구 팻말이 있는 산청군 삼장면 평촌리 유평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탐방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대원사를 거쳐 유평마을까지 왕복 7km이니, 대략 3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곳곳에 설치한 전망대와 쉼터에서 쉬며, 계곡의 장관을 즐기고 해설판을 읽느라 실제 소요시간은 3시간 30분이 훌쩍 지났다.

 

역사 속 피난처, 이제는 생태탐방로

탐방로는 주로 목재 데크를 이용하거나 자연 그대로의 흙길이었다. 숲에서 뿜어내는 피톤치드 등 천연 화학물질로 기분이 상쾌했는데, 나무와 흙에서 나오는 향이 더해지면서 머릿속의 짙은 안개는 저만치로 물러가 버렸다. 출발 전 분명 뒤를 따라오던 중년 부부는 어느새 앞질러 필자의 앞에서 걷고 있었다. 좁은 산책길이지만 부부는 손을 꼭 잡은 채 올라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정겨워, 살짝 부러웠지만 어쩌랴. 지리산 대원사계곡길은 혼자라도 하늘을 품을 수 있고, 드넓은 계곡을 안을 수 있는 곳이니 둘이든 혼자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대원사계곡은 역사적으로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양왕)과 관련이 깊다. 문헌에는 구형왕이 피난 갈 때 대원사계곡에서 소와 말의 먹이를 먹였다고 전해진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구형왕은 겸지왕의 아들로 신축년(521)에 즉위하여 43년간 지금의 산청군 금서면 일대를 다스렸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신라 법흥왕의 영토 확장 야욕에 신라에 투항했다.

삼국사기에는 금관국의 왕 김구해가 왕비와 더불어 세 아들과 함께 자기 나라의 보물을 가지고 신라에 항복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역사에는 그가 신라 법흥왕에게 간단히 항복하였다고 되어 있지만, 어떤 왕인들 자신의 나라가 멸망하는데 마냥 기쁘기만 하겠는가. 그 역시 망국의 한과 나라를 저버린 자신의 한계와 무력함에 치를 떨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계곡을 바라보니, 문득 나라 잃은 망국의 한과 인간사의 덧없음을 노래한 고려 말의 유학자 길재가 쓴 시조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데 없네가 생각난다. 그뿐만 아니다. 대원사계곡은 이 지역에 터를 잡은 남명 조식 선생과 그의 문하들이 지리산의 최고봉인, 천왕봉에 오르는 최단 코스이기도 하였고,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등의 격동기에 많은 사람의 피난처 혹은 새로운 삶의 터전이기도 하였다.

 

 


 

신록 속 대원사 최고 절경 용소

소나무와 다양한 활엽수를 지천에 두고 걷는 탐방로는 실로 매력적이었다. 바닥이 보일 만큼 맑고 깨끗한 계곡물을 보니 금방이라도 1급수 수서곤충인 강도래, 날도래, 가재 등이 튀어나올 것만 같다. 이 작은 생명을 보호하는 게 이곳의 계곡을 지켜나가는 첫걸음인 만큼, 탐방객들의 실천이 중요할 것 같았다.

그렇게 한 시간 반쯤을 올라가니, 우리나라 3대 비구니 사찰로 유명한 대원사가 나왔다. 신라 진흥왕 때 세워진 대원사는 임진왜란과 여수·순천사건 당시 빨치산 토벌 작전으로 불태워졌지만, 이후 만허당 법일 스님의 재창건으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한다.

전국 국립공원 탐방로에 설치한 다리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고 알려진 58m 길이의 방장산교를 지나, 조금 걸어가자 대원사 최고의 절경인 용소(龍沼)가 나왔다. 용이 100년간 살았다는 전설을 지닌 곳이다. 여름이면 푸르스름한 물 색깔을 띤다는데 이날은 벌써 여름이 오려는지 푸름에 가까운 초록색에다, 안쪽이 투명하게 보일 정도로 물이 맑았다. 한때 이곳은 용과 함께 금실 좋은 원앙과 담비, 수달이 놀이터 삼았다고 한다.

 

시인의 노래가 된 가랑잎초등학교

이윽고 유평마을이 가까워져 올 즈음, 계곡 너머에 낡은 건물이 눈에 띄었다.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던 그 건물은 비로소 탁 트인 장소에 이르자, 학교 건물임이 명백했다. 1994년에 폐교된 가랑잎초등학교였다. 지금은 산청유평학생야영수련원간판을 달고 있다. 대원사계곡길이 없었더라면, 그래서 유평마을로 올라가는 찻길로만 올라간다면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학교였다. 세상에! 전국 어느 초등학교 이름이 이렇게 예쁠 수가 있단 말인가. 절로 감탄이 나왔다. 이름이 아름다운 이 학교는 당시 젊은 교사였던, 지금은 고인이 된 정세기 시인의 시, ‘가랑잎초등학교로 발표되었다.

이름만으로도 좋아라. 지리산 중턱의 가랑잎초등학교. 더덕 순같이 순한 아이 셋과 선생님 한 분이 달디단 외로움 나누며 고운 삶의 결을 가슴에 새기고 있어라.(중략)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가 영혼의 파문을 일으키고 꽃잎 피고 지는 것으로 계절의 흐름을 가늠하는, 그냥 사는 것이 공부가 되는 교실 밖 교실

시인은 머지않아 가랑잎처럼 사라질지도 모를 어여쁜 이름의 가랑잎초등학교를 자신의 시로 고백하며 못내 아쉬워한 것 같다. 만난 적도 본 적도 없는 시인이지만, 그의 맑고 청량한 인품이 느껴지는 듯하여 가슴이 서늘했다. 대략 세월을 짚어보니 이 시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지금쯤 삼사십대의 어른으로 추정할 수 있다. 순수하고 맑은 이름의 학교와 이름만 들어도 볼이 발개질 그 시인 선생님을 기억에 품고,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까?

탐방을 마치고 출발지였던 주차장에 이르자 어느새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잠시 후 시나브로 사방에 어둠이 깔리는 동안에도 필자는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대원사계곡길의 아름다운 여정에 취해 있었다.

 

 

 

 

이인규 명예기자(소설가) 사진 이윤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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