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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특집]가야유산 기획⓳ 머리빗으로 단장한 가야사람들

작성2020년 05월[Vol.86] 조회161

 

 

 

필자는 꽤 드문 동경박사(銅鏡博士)’이다. 거울에 끌린 이유가 외모가 아니라 아쉽게도(?) ‘청동거울을 통해 고대사회의 모습을 밝힐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거울은 신분을 드러내는 상징물이었지만 고려시대부터 화장용으로 바뀐다. 이런 거울과 짝을 이룬 유물이 바로 머리빗이다. 고려시대 무덤에서 청동거울의 매끄러운 면에 나무로 만든 머리빗의 모습이 선명하게 발견된다. 머리숱이 적은 동경박사가 머리빗을 연구한다니 주변 사람들의 놀림감이 되기도 했다. 한일고고학자 연구회에서 발표한 금관가야의 머리빗에 대한 연구를 요약했다.

      

빗의 종류 - 머리빗과 핀

빗은 한자로 소(), (), (), (), () 등 주로 머리카락을 손질하는 용도로 쓰지만 고정하거나 장식하는 머리핀(hairpin)을 의미하기도 한다. 빗의 모양은 지금도 비슷하지만 장식용은 개성과 신분에 따라 다양하다. 특히 삼국시대 이전 장신구는 거울처럼 화장도구가 아닌 주술이나 신분 과시용으로 사용됐다. 잘 알다시피 가야의 역사기록이 부족하기에 이웃 신라의 기록을 참고해 보자.

흥덕왕 9(834)에 교지를 내려 진골 여성은빗에 슬슬전(瑟瑟鈿)을 박은 것과 대모(玳瑁)의 사용을 금한다. 비녀에는 금실을 새겨 넣거나 구슬을 다는 것을 금하며

통일신라는 삼국사기의 기록처럼 왕족인 진골마저 머리를 장식하는데 규제가 있었다. 머리장식이 곧 신분질서의 상징이었다는 얘기다. 대모는 바다거북의 등껍질로서 지금도 귀한 재료이다. 금관가야 왕족의 무덤인 김해 대성동 고분군에서 뼈로 만든 머리빗 장식이 나와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무덤의 주인공이 아니라 모두 순장자들의 머리빗 장식이었다. 특히 대성동 91호분 순장자 머리 부분에서 발견된 빗은 통일신라에서도 엄격히 규제하던 구슬장식이 달려 순장자의 신분 연구에 깊은 과제를 던졌다

 

대성동 출토 머리빗

대성동 머리빗을 연구한 김미도리, 최지애 선생에 따르면 동물의 자뼈(尺骨)로 추정되는 뼈를 다듬어 양 끝에 지지대(빗귀)로 이용하고, 그 사이에 가늘게 다듬은 빗살을 부채꼴로 배치하였다. 빗살은 옻칠을 한 비단실로 묶어 고정했다. 또 작은 유리구슬을 달아 완성했다. 빗을 만드는 방법은 통으로 된 몸체에 홈을 파서 빗살과 빗귀를 만드는 각치식(刻齒式), 빗살과 빗귀를 따로 만들어 조합하는 결치식으로 구분된다. 대성동에서 출토된 머리빗은 결치식이다.

 

머리빗을 한 가야사람은 누구였을까?

가야의 순장문화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한 연구자는 순장을 절대 권력자의 존재를 증명하는 장례풍습으로서 가야의 신분사회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고고학 자료라고 설명한다. 결국 순장을 당한 사람은 권력자의 비첩이나 시종, 호위무사 등이었다는 것인데 대성동에서 발견된 머리장식으로 보아 이들의 신분이 결코 낮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인골분석 결과 대성동 88호분에서 발견된 머리빗을 한 순장자는 키가 145cm인 어린 여성과 154cm인 성인 남성이었다. 91호분에서는 148cm 키에 출산을 경험한 성인 여성과 145cm의 어린 남성에게서도 머리빗이 발견되어 남성도 빗으로 장식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순장자들은 과연 누구였을까?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은 당연히 금관가야인이다. 왕의 시중을 드는 사람들이 신분을 나타내는 도구로서 머리빗을 하였고, 왕의 무덤에 같이 묻혔다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일 것이다.

그런데 순장자들의 키가 작다는 점에 자꾸만 마음이 간다. 일본 죠몽시대 동일본에서 발견되는 머리빗과 비슷하고 붉은 안료(벵갈라)를 시신 주위에 뿌린 점까지 고려하면 혹시 왜인은 아니었을까? 후한서(後漢書)등에 기록된 생구(生口)’와 같은 왜인이 금관가야 왕의 죽음에 순장된 것은 아닐까?

뼈로 빗을 만든 풍습으로 볼 때 북방 유목민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대성동 고분군에서는 선비족 등 북방 유목민과 관련된 다양한 유물들이 확인된다. 중국의 사기(史記)흉노열전(匈奴列傳)에는 한에서 흉노에게 보낸 물품 중 비여(比余)’라는 것이 나온다. 한서(漢書)에는 비소(比疎)’라고 적혀있는데 빗 중에서 섬세하게 만든 것을 ’, 조잡한 것을 라고 불렀다는 기록을 본다면 북방 유목민도 빗으로 머리를 장식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다양한 가능성이 있지만 지금으로선 머리빗은 신분이 높은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장식이었고, 금관가야의 순장자는 남녀 모두 그런 머리빗 장식을 사용하였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아는 전부이다. 그 머리빗이 금관가야의 것인지, 일본의 것인지, 중국이나 북방 유목민의 것인지 아직 명확하지 않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이양수 국립진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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