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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반하다

[사람에 반하다]세계가 인정한 신현세 의령한지

 

 

 

‘800여 년 전 성 프란체스코의 친필 기도문이 한지(韓紙)로 복원됐다.’ 지난 2016년 12월 이탈리아 로마로부터 날아든 낭보다. ‘카르툴라(Chartula)’라는 명칭의 프란체스코 기도문은 이탈리아 국보급 유물. 지류(紙類)문화재 복원에 일본 화지를 대부분 사용하던 유럽국가에서 한지가 쓰였다는 것은 일대 사건이었다. 복원에 사용된 종이는 의령한지. 신현세(72) 장인이 만든 한국의 종이다.

 

지류문화재 복원 ‘세계 최고’ 인증

이 일을 계기로 ‘신현세전통한지’는 이탈리아 문화부 산하 도서병리학연구소(ICRCPAL)로부터 ‘지류문화재 복원 인증서’를 받았다. 한지로는 최초이다. 도서병리학연구소는 유럽에서 가장 권위 있는 지류 복원 기관. 우리 정부가 연간 수천억 원에 이르는 유럽 내 지류문화재 복원 시장을 일본 화지가 독점하다시피 하는 것을 깨기 위해 2014년부터 ‘한지 인(in) 유럽’ 프로젝트를 펼친 결과이기도 했다.

카르툴라를 포함, 이탈리아 중요 유물 5점을 복원하는 데 사용된 ‘신현세전통한지’는 이듬해인 2017년 교황 요한 23세 지구본 복원에 사용됨으로써 그 진가를 다시 한 번 발휘했다. 제작연도가 1960년이라고 알려진 교황의 지구본은 지름 1.2m, 높이 1.8m, 둘레 4m의 거대한 크기이다. 이탈리아는 곡면에서도 깨끗하게 붙는 신현세전통한지와 주름이 잡히는 다른 종이를 지구본에 배접해 비교 발표까지 하면서 한지의 우수성을 인정했다.

 


 

50여 년 전통방식 지켜온 신현세 장인

“초등학교 졸업하고 시작했지. 집안 살림이 어려워 더 이상 학교도 못가고, 취업할 데도 없고. 그때는 의령 신반천 주변이 종이 공장이나 마찬가지였거든. 그렇게 시작했어요.”

반세기 이상 한지를 지켜온 신현세 장인. 칠순을 넘겼지만 한지에 대한 자부심은 여전하다. “편하려고 했으면 종이 만드는 일을 그만뒀지.” 툭툭 내뱉는 장인 특유의 말투에 묵은 진심이 우러나온다.

닥나무를 베고, 물에 불려 잿물에 삶고, 닥피를 벗겨 선별한 후 방망이로 두드려 닥 섬유를 연하게 한다. 이어 닥풀을 섞어 종이를 뜬 후 말리는 작업까지, 한지 한 장 만드는 데 백 번 가까이 손이 간다. 그래서 백지(白紙)가 아닌 백지(百紙)라는 말까지 생겼단다. ‘편할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콩대나 짚을 태워 잿물을 받는 작업과 황촉규 뿌리즙을 쓰는 닥풀 대신 간단하게 화학약품으로 처리할 수 있지만 차마 그렇게 하지를 못한다.

“종이 질이 달라져요. 대번에 표가 나지. 차이를 아는데, 성에 안차는 종이를 만들 수는 없지요.”

 

우수성 알리고 관공서부터 수요 확대해야

종이 뜨는 방법은 두 가지라면서 전통방식 ‘외발뜨기’ 와 일본식 ‘쌍발뜨기’ 시범을 보여줬다. 대수롭잖게 흔드는 것 같은 손놀림 하나하나가 사실 국보급 기술인데 전수자가 없어 내심 속을 끓였다. 그런데 올해 3월부터 문화재보존학을 전공한 박재균(33) 씨가 전수자로 선정됐다. “신현세 장인의 한지가 최고”라는 지도교수의 말을 듣고 몇 년째 졸라 이제 겨우 배우기 시작했다.

전수자를 바라보는 한지 장인의 마음에 또 다른 근심이 있다. 한지 수요가 예전 같지 않아서다. “관공서부터 임명장이나 공식 서류에 한지를 사용하면 좋겠다”는 말에 한숨이 묻어있다.

의령군은 지난해 11월 신현세 장인을 ‘의령한지장’으로 지정하고, 봉수면 신반천을 중심으로 한지체험장, 한지전시관 등을 포함한 ‘국사봉권역사업’을 추진해 의령한지의 맥을 이어갈 계획이다. 

 

황숙경 기자  사진 이윤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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