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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반하다

[사람에 반하다]신뢰가 최대 자산입니다 … 최효석 재경 경남도민회장 인터뷰

 


 

인터뷰 장소부터 달랐다. 지난달 초 신임 재경도민회 최효석 회장(72)을 서울 여의도 어느 커피숍에서 만났다. 경남도청 서울본부 직원들과 오찬간담회를 마친 직후였다. ‘명패가 놓인 딱딱한 사무실보다는 트인 공간이 좋다’는 그에게서 재경도민회의 새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내세우는 인생철학은 신뢰

합천이 좁았나 보다. 그는 일찍이 진주로 갔다. 중·고등학교와 대학을 모두 진주에서 나왔다. 첫 직장은 초등학교 교사였다. 부부교사로 근무하던 70년대 말 남해고속도로 등 전국적인 건설붐을 타고 건설현장에 뛰어들었다. 현재 연 1500억 원 매출의 4개 회사 대표회장이다. 정규직 120여 명, 50~60곳의 토목건설현장 식구들까지 합치면 수천 명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그가 내세우는 인생철학은 신뢰이다. 하청업체로 일하던 시절, 공사과정에서 생기는 손실을 원청업체의 탓으로 돌리거나 책임보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하청업체로서는 이상한 논리였지만 일단 원청업체를 믿어보자는 태도였다. 사람과 기업 그리고 모든 거래에 신뢰의 원칙을 놓치지 않았다. 이런 그만의 소신은 원청업체를 감동시켰고 결국 일감이 늘어나고 도급액이 불어나는 사업운으로 이어졌다.

 

정치색 뺀 봉사가 장수 비결

바르게살기운동 중앙협의회 회장까지 맡게 된 첫걸음도 공무원 친구의 부탁으로 시작됐다. 표나지 않는 돈도 많이 썼다. 경제적으로만 따진다면 밑지는 장사였지만 사람과의 신뢰가 쌓이는 엄청난 투자가 됐다. 기업하는 사람이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게다. 그도 그랬다. 그래도 최대한 정치색을 뺀 봉사가 결국 장수의 비결이 됐다. 진보와 보수정권이 바뀌었지만 평통 부의장을 이어간 것도 그만의 특이한 이력이다. ‘기업하는 사람이 어디 떡고물 계산하지 않았겠냐’는 지적은 언제나 옳다. 그래도 그는 “이해타산을 앞세워 특정자리를 탐내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그는 남북교류에 남다른 관심이 있다. 10여 년 전 고 노무현대통령의 방러, 방북을 전후해 해빙무드가 조성될 때 그도 육해공의 다양한 경로로 북한을 방문했다. 북한의 현실을 목격했고, 경남에서 추진한 소학교 건립사업, 통일딸기 보급사업 등을 주도했다.

“가 보니까 알겠더라”는 최효석 회장의 방북체험은 나이를 뛰어넘는 생각의 진보를 가져왔다. 70대 초반 생물학적으로 보면 보수이다. 그런데 그의 생각은 젊고 젊다. 회사 중역들도 ‘회장님은 아이디어가 많아서 따라가기 힘들다’고 할 정도이다. 사실 그의 북한관은 꽤 진보적이다.

 

협천에서 합천으로

옛날 그의 고향은 협천으로 불렸다. 그런데 지역여론은 불만이 깊었다. “왜 합천이 좁아! 군 가운데 가장 넓다”며 개명을 요구했다. 1914년 일부 이웃지역을 합치면서 ‘협천(狹川)으로 쓰고 합천으로 부르는 것으로 정리됐다’ 한다. 합천 산골소년이 전국단위 단체장을 연거푸 맡게 된 그의 인생 이력은 합천의 이름 변천사와 많이 닮았다. 재경도민회를 시군향우회장과 협치소통으로 이끌고 고향 대학생들의 기숙사인 서울 남명학사에는 유명인 초청특강 등 색다른 변화까지 기획하고 있다.

 

봉사실적 가산제 도입해야

경주 최씨 종친회 회장까지 겸직한 그의 사회봉사는 생명에 대한 존중을 바탕에 깔고 있다. 그런 그가 사회봉사를 이끌어내는 제도적 대안을 제시했다. 

“관급공사 등에 사회봉사 인센티브를 주면 뒷돈 거래도 줄어들고 사회봉사영역에 다양한 자금이 들어와서 사회적 약자들도 더 많은 도움을 더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비슷한 얘기를 여러 번 했지만 그 자리에서는 좋다고 해놓고 그 뒤로는 연락이 없더라”며 아쉬워했다.

최 회장의 제안은 ‘사회적봉사마일리지나 사회적기업 조례를 통해 제도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 회장은 “김경수 지사가 이 문제를 해결한다면 경남발 혁명이 될 수 있다”는 센 얘기도 했다. 

 

글·사진 최석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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