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메뉴 바로가기 본문기사 바로가기

아하! 경남역사

[아하! 경남역사]가야유산 기획❸ 순장, 가야를 말하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과거 신분제 사회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아마도 순장(殉葬)만큼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없을 것 같다. ‘죽은 권력자를 위해 종속 관계에 있는 사람을 강제로 죽여 함께 매장하는 장례행위’가 순장이다. 이처럼 사람의 목숨도 빼앗을 수 있는 고대사회의 냉혹한 신분체계를 반영한다. 중국과 이집트, 스키타이, 로마 등 고대 동서양에서 보편적으로 확인되는 장례풍습이다.

고대 한반도의 순장과 관련한 문헌기록은 『삼국지』 위서 동이전(부여), 『삼국사기』 신라본기(신라) 단 2건뿐으로 가야의 순장 기록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1977년 발굴된 고령 지산동 44호분을 시작으로 김해 대성동, 함안 말이산, 창녕 교동과 송현동 등 주요 가야고분군의 대형 무덤들이 발굴될 때마다 순장의 흔적들이 발견되고 있다. 이를 통해 타인의 목숨을 빼앗아서라도 현생의 안락한 삶을 이어가고자 했던 가야사람들의 내세관을 엿볼 수 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순장, 가야에서 신라로

고대 한반도에서 순장풍습의 존재가 증명된 곳은 가야와 신라뿐이다. 고구려와 백제는 앞으로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발굴성과로 보면 고대 한반도에서 가장 빠른 순장 사례는 김해 대성동 고분군, 3세기 말 금관가야 최고지배자(왕)의 무덤이었다. 변한(구야국)에서 가야로 성장해 가는 시기로, 덧널무덤이 대형화되고 청동솥 등 북방계 유물과 함께 다량의 유물이 부장되는 등 강력한 지배자의 등장으로 인해 가야 사회가 급변하던 때였다.

순장 역시 같은 배경에서 출현했다. 4세기에는 김해, 부산 등 금관가야 문화권에서 성행했고 5세기가 되면서 아라가야, 대가야, 비화가야, 신라 등으로 확산됐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이 시기 또한 각 정치체가 급성장하는 시기로 왕과 귀족들의 장례에는 거의 순장이 시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6세기 초의 대가야 왕릉에서는 중심덧널 바깥에 순장자를 위한 별도의 돌덧널을 만들어 무려 40여 명에 이르는 순장자를 매장하는 등 가야권에서 가장 발전한 형태의 대규모 순장이 확인됐다.

<!--[if !supportEmptyParas]--> 

순장에 담긴 가야사람 이야기

보통 고분이 발굴되면 무덤 규모나 유물에 관심이 쏠린다. 하지만 가야 고분을 발굴하다 보면 순장된 인골을 마주할 때가 종종 있다. 억울하게 죽은 원통함 때문인지 1500년의 세월에도 주검의 흔적이 남은 것이다. 물론 모두 완전한 상태는 아니다. 하지만 이 인골들은 많은 인체 정보를 지니고 있어 그 어떤 유물과도 바꿀 수 없는 학술적 가치가 있다.

가야의 순장자들은 대체로 내세에서 주인을 위해 최상의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 건강한 20~30대 남녀였다.

가장 널리 알려진 가야의 순장자는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인골로 복원한 ‘송현이’일 것이다. Ⅲ-10호분(구 송현동 15호분)에서는 남녀 두 명씩 모두 네 명의 순장자가 나란히 매장되었으며, 무덤 주인의 발 아래쪽 가장 먼 곳에 뉘어져 있던 이가 바로 송현이였다. 발굴 초기, 인골이 출토되면서 가야사람 복원을 염두에 둔 발굴조사가 진행되었다.

송현이의 연구 복원은 국립문화재연구기관을 중심으로 고고학, 유전학, 생화학, 물리학, 법의인류학, 해부학, 조형학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력하여 만들어낸 최고의 작품이다. 송현이는 ‘16세 소녀’로 밝혀졌다.

또 쌀, 보리, 콩 등이 주식이었지만 빈혈에 시달렸고, 어금니에서는 고도의 충치가, 앞니에서는 반원상의 인위적인 마모가 있었으며, 꿇어앉은 상태의 노동으로 인한 흔적도 종아리뼈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한편 역사다큐 프로그램에 ‘가야 여전사(女戰士)’로 소개되면서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순장자들도 있다. 김해 대성동 고분군(57호분)에서 발굴된 순장인골 세 구로, 모두 30대 여성들로 밝혀졌다.

머리맡에 철제 투구가 세 점 출토됐고 건장한 남성에 가까울 정도로 골격이 발달해 있어 여성 전사의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무엇보다 세 명 모두 골반 부위에 출산 흔적이 있어 중년 주부들도 순장의 대상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두 사례 모두 문헌기록에는 없는 신분제 사회로서의 가야의 면모를 가늠하게 한다. 최근 함안 말이산고분군의 중소형 무덤들에서도 순장인골이 발굴되는 등 주요 가야고분군에서의 순장자료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이다. 앞으로 다양한 과학 분석을 통해 가야의 순장문화가 낱낱이 밝혀지기를 기대해 본다. 

 

김수환 경남도 가야사연구복원추진단 학예연구사

방문자 통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