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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

[문화의 향기]내 인생의 책 한 권 - 상허 이태준의 <무서록>

이 책 초판본과 책방에 있는 모든 책과 바꿀 수도 있어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수원에서 가장 큰 헌책방 남문서점을 운영하는 윤한수 선생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초판본을 구하고자 하는 책의 제목은 바로 <무서록>이다. 상허 이태준 선생의 <무서록>은 서슬퍼런 일제강점기인 1941년 박문서관에서 출간된 수필집으로 짧은 글 57편을 묶은 책이다. 초판본 표지에는 이태준 선생의 막역지우인 화가 김용준 선생이 그린 단아한 수선화가 그려져 있다.

김용준 선생은 우리나라 근대수필 대표작 중 빼놓을 수 없는 <근원수필>을 남겼다. <무서록>을 처음 읽었던 때가 1997년이니 벌써 20여 년 세월이 흘렀다. 막 군대를 제대하고 찾았던 진주문고에서 <무서록>을 구매해 읽었다. 범우사에서 나온 이 책의 값은 당시 단돈 2000원이었다. 대학생 시절 이태준 선생의 <문장강화>는 필독서였고 자연스레 그의 소설들과 <무서록>까지 찾아 읽게 되었다. 이태준 선생은 우리 말과 글을 사랑했던 문장가였으며 우리 문학의 수준을 끌어올린 작가다. 몇 권의 졸저를 내며, 어떻게 글을 써야 할까 길을 알려준 분을 꼽는다면 단연 이태준 선생이다. 이태준 선생의 작품들이 길잡이였고, 특히 <무서록>은 글맛이 깊어 언제 꺼내 읽어도 좋다. 가난한 식민지 지식인의 고뇌와 쓸쓸함이 문장에 스며있지만, 그 때문에 문장의 청담(淸淡)과 고졸(古拙)이 더 은은하게 배어난다.

사실 이태준 선생은 해방 직후 북으로 넘어가 월북작가로 낙인찍혀 <무서록>뿐만 아니라 작품들 대부분이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 <무서록>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까닭은 책과 문방구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오기 때문이다. 책방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무서록>()’이란 글에 나오는 글귀를 크게 써뒀다. 세월이 지나 헌책방 책방지기가 된 연유도 <무서록>의 이 문장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책은 한껏 아름다워라. 그대는 인공으로 된 모든 문화물 가운데 꽃이요 천사요 또한 제왕이기 때문이다.”

 

- 조경국 (진주 소소책방 책방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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