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어리와 염탐꾼 설화

벙어리와 염탐꾼 설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몇 해 전의 일이다.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을 칠 야심을 품고 염탐꾼을 잠입시켜 방방곡곡을 염탐하게 하였다. 그런데 안동 지방에 왜놈 염탐꾼이 숨어들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한 노인이 걱정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어허, 심상치 않는 일이군."

곁에 있던 유서방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김노인, 왜 그러십니까?"
"아무리 봐도 왜국 사람임에 분명해."
"예, 왜놈이라구요?"

유서방의 아내도 일손을 놓고 참견했다.

"왜국사람이, 왜 우리 고장에 왔나요?"
"염탐하려고 온 것 같아."
"염탐이라뇨?"
"우리 말이 서투를 뿐 아니라 자기의 짐을 지고 멀리 남해 일대를 돌아다닐 건장한 사람까지 구하더군."

노인의 안색이 변하자 유서방 내외도 불안했다.

"정말 이상한 사람이군요?"
"내 추측이 분명해. 왜놈이야."

부인이 깜짝 놀라며 남편을 쳐다보자 남편도 얼굴에 불안한 기색이 서렸다.

"왜놈이라면, 노인의 말이 맞을 거예요. 얼마 전에도 왜놈이 우리 고장을 지나갔단 소문을 들었는데 정말 심상치 않군요."
"암, 자칫하다간 왜놈들에게 나라까지 빼앗길 우려가 있어."
"그렇다면 그놈의 행동을 감시하여 음흉한 속셈을 막아야 합니다."

유서방이 주먹을 불끈 쥐자 아내는 남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어떻게 막지요? 관가에서도 뚜렷한 증거가 없어 잡질 못하니 그렇게 마음 놓고 돌아다니지요."
"아냐, 내가 미행해야지."
"아니, 당신이 어떻게......"
"벙어리가 되어 따라 다니면 놈은 마음 놓고 날 대할 거요."

노인은 유서방의 묘책에 고개를 끄떡였다.

"과연 좋은 생각일세. 자네를 놈에게 데려다 줄 테니 잘 해보게."
"예"

유서방은 결심을 한 다음 노인의 뒤를 따라갔다. 염탐꾼의 물음에 유서방은 벙어리 흉내를 냈다. 염탐꾼은 처음에는 벙어리라고 꺼려하다가 노인의 말에 오히려 벙어리가 좋다고 좋아했다.
그날부터 유서방은 벙어리 노릇을 하며 염탐꾼의 동정을 살폈다. 그들은 며칠이 지나 남해 해안에 당도했다. 염탐꾼은 남해를 두루 돌아다니며 지도를 자세히 그렸다 그러던 어느 날 염탐꾼은 유서방을 데리고 주막으로 들어갔다. 그날 밤 염탐꾼은 자기의 소임을 다한 듯 기분 좋게 술을 잔뜩 퍼마신 다음 잠자리에 떨어졌다. 이 때 유서방은 염탐꾼이 그린 지도를 꺼내어 들여다보았다. 육지와 바다 그리고 강, 마을 등을 자세히 그렸다. 전략상 매우 중요한 자료였다. (내가 이걸 본 이상 내버려 둘 순 없지. 바다를 육지, 육지를 바다로 고쳐 그려 놓으면 나중에 혼선을 빚을 게다) 다음 날 염탐꾼은 유서방에게 제법 많은 돈을 주고 작별했다.
그로부터 몇 해 후 임진년, 왜적과의 치열한 해상전이 벌어졌다. 바다는 온통 왜적선으로 덮였다. 선두에서 배를 달리는 왜장이 큰소리로 외쳤다.

"지도를 펴라."

무장이 명령대로 지도를 폈다.

"여기 원 위치요."

한동안 지도를 보던 왜장이 무장에게 시선을 돌렸다.

"음 저쪽으로 뱃길이 있구나. 이순신의 전함이 너무 가까이 오면 이쪽으로 빠져나간다."

해상전은 더욱 치열해졌다.

"모두들, 날 따르라."

왜선은 도망치기 시작했다. 지도에 나타난 대로 이락포에서 설천면 비란리 사이가 파랗게 되어 바다로 이어지는 줄 알았다. 그들은 이락포에서 지금의 가철리 쪽으로 나가려 했으나 그곳은 육지로 막힌 곳이 아닌가. 왜장은 크게 당황했다.

"뱃길이 막혔다. 지도가 틀렸구나."

왜장은 화가 치솟아 지도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지도만 믿었다가 이순신에게 모두 죽게 되었다. 이리하여 한낱 농부인 유서방의 지혜로 인하여 수많은 왜적선을 침몰시키고 승전하게 되었다. 그 후부터 경남 남해군 고현면 오곡리를 당시 지도에 파란 칠을 했다고 해서 가청리라고 부른다는 전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