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선 건조

십경도는 이순신의 생애에서 가장 특기할 만한 부분 10가지를 그림으로 묘사한 것으로 정창섭, 문학진 교수의 작품이다. 이들 십경도는 현충사의 본전 안 벽면에 걸려 있으며, 1970년 4월 한국기자협회에서 기증한 것이다.

거북선 건조(전라좌수사 시절)

이순신은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이후 해전에서 일본 전선을 격파하는데 탁월한 성능을 발휘한 거북선을 개발했다. 그는 일본 수군의 강점을 무력화하고 조선 수군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전함 개발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에 따라 나대용과 같은 기술자들과 함께 개발에 주력한 결과 해상의 탱크라 할 수 있는 거북선을 건조하고 이를 통해서 수적으로 우세한 일본 함대를 격파하고 큰 공을 세웠다.
거북선을 건조하게 된 동기는 “신이 일찍이 왜적의 난리가 있을 것을 걱정하여 특별히 거북선을 만들었사온데, 앞에는 용의 머리를 붙여 입으로 대포를 쏘고, 등에는 쇠못을 꽂았으며, 안에서는 밖을 내다볼 수 있고, 비록 적선 수백 척 속에라도 뚫고 들어가 대포를 쏘게 하였습니다.” 라고 장계에서 밝히고 있다.
당시 일본 수군의 전선은 기동성이 우수한 반면 상대적으로 내구력이 약했으므로 거북선과 충돌할 경우 적선은 쉽게 깨어져 나갔다. 거북선은 등판 위에 쇠못을 꽂아 백병전에 능한 일본군이 전선 위로 올라서는 것을 차단했다. 배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있었지만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 볼 수 없었으며 전·후·좌·우의 사방에서 화포를 쏠 수 있었다. 이러한 기능으로 거북선은 해전에서 적진을 교란하는 돌격선의 역할을 수행했다.
십경도에 있는 전라좌수사 시절 거북선 건조 삽화 모습 십경도4-거북선 건조

이 외에도 이순신은 우리가 갖고 있던 승자총통과 쌍혈총통이 총신이 짧고 총구가 얕아 일본의 조총보다 성능이 떨어진다고 판단하고, 일본군의 조총을 연구하여 그 성능과 화력을 높인 정철 조총이란 새로운 개인화기를 개발하기도 했다

우리의 승자총통이나 쌍혈총통은 총신이 짧고 총구멍이 얕아서 왜적의 조총만 같지 못하며 그 소리도 웅장하지 못하므로 정철을 두들겨 만들었는데 총신도 잘되고 총알이 나가는 힘이 조총과 똑같습니다. 정철로 만든 조총 5자루를 올려 보내오니 조정에서 각 도의 여러 고을에 명하여 모두 제작토록 하여 서로 다투어 만들게 함이 좋겠습니다.

이 기록에서 이순신이 얼마나 용의주도하게 창의력을 발휘했는가를 알 수 있다. 이와함께 사조구(四爪鉤), 장병겸(長柄鎌)등을 만들어 해전에 사용하였다.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국민의 창의력과 개척정신이 희박했을 때 국운이 기울어지고 급기야는 몰락의 과정을 밟았음을 알 수 있다.
이순신은 왜적이 침략해 오리라고 예견하고, 이에 대비하는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이순신은 영내에 앉아있기만 하지 않고 관하 각 포구를 직접 돌아보면서 무기를 점검하며 방비에 전념하였다. 그리고 4월 12일, 거북선을 완성하였던 것이다. 전란에 대비한 이순신의 이러한 피나는 노력은 수백 척의 일본 전선을 물리치고 국난을 극복할 수 있는 힘으로 작용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이순신의 유비무환의 정신을 또한 깊이 새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