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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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주시

    논개

    역사인물

    • 위치
    • 의기사(논개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 (본성동)
    • 문의처
    • 055-749-5171
  • 주요내용

    논개는 1592년 10월 5일부터 10일까지의 싸움에서 10배에 가까운 왜적을 물리쳐 대승을 거둔
    임진왜란 3대첩 중의 하나인 진주성대첩에서 패배한 왜군이 1593년 6월 12여만 대군을 이끌고 다시 쳐들어 온
    제2차 진주성 싸움에서 중과부적으로 성을 지키던 민.관.군 7만 명이 끝까지 항쟁하다 장렬한 최후를
    마치고 진주성이 함락되자 왜장을 촉석루 절벽 아래의 의암 바위로 유혹하여 그를 껴안고 강물에 투신한 의기이다.

    논개가 왜장을 안고 투신할 때 팔이 풀어지지 않도록 열 손가락에 가락지를 끼었다고 전한다.
    이 가락지는 남강을 가로지르는 진주교 교각 상부에 논개 충절의 상징물로서 만들어져 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적에게 더럽힘을 당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자결한 여인들은 많았지만,
    논개와 같이 한목숨을 던져 먼저 간 성민들의 원수를 갚은 의로운 기개를 가진 장한 여인은 우리 역사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논개의 정신은 진주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으며 진주정신으로 빛나고 있다.

     

    논개영정은..

    1960년 의기사가 중건된 이후부터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가 그린 논개영정이 봉안되어 왔으나 고증결과 복식(服飾)과 머리모양 등이 시대와 맞지 않아 논란이 되어 오던 터에 진주시와 장수군은 논개의 얼을 선양(宣揚)하기 위해 전국에 현상 공모 과학적인 고증(考證)을 거친 영정전문작가의 작품을 선정, 공동으로 제작하여 2008년 2월 4일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국가표준영정(國家標準影幀) 제79호로 지정(指定)받아 2008년 5월 23일 기존 영정과 교체 봉안하였다.

    본 영정은 충남대학교 석천(石川) 윤여환(尹 汝煥) 교수의 작품으로 조선시대 전통 영정기법으로 제작되었으며, 비단이라는 독특한 재질을 살려내는 배채법(背彩法)과 육리문법(肉理紋法) 등을 활용하여 얼굴 표정에서 배어 나오는 전신사조(傳神寫照)로 표현하였다. 표정은 의기에 찬 모습이고, 자세는 순국을 위해 왜장을 향해가는 역동적이고 힘찬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논개 표준영정은 가로110㎝, 세로 180㎝ 크기의 비단 바탕에 천연채색(天然彩色)으로 된 정면 전신입상(全身立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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