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인물

각 시군별로 간략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시·군 홈페이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김해시

    한뫼 이윤재

    역사인물

    • 위치
    • 김해한글박물관(예정) : 경상남도 김해시 분성로 221 (외동)
    • 문의처
    • 055-330-3938
  • 주요내용

    출생지 : 경남 김해부 우부면 답곡리(현재 김해시 대성동)

    약력

    국어학자 · 사학가 · 독립운동가. 경상남도 김해 출생. 호는 환산(桓山) · 한뫼. 용준의 아들이다. 김해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김해 합성학교(合咸學校)에서 교편을 잡은 뒤, 다시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서 수업하였다. 1913년부터 마산의 창신학교(昌信學校) · 의신여학교(義信女學校)에서 교편을 잡다가 평안북도 영변의 숭덕학교(崇德學校) 교사로 재직 중 3 · 1운동에 관련되어 평양 감옥에서 3년간 옥고를 치렀다. 1921년 중국에 건너가 북경대학 사학과에서 수업한 뒤 1924년 귀국하여 정주의 오산학교(五山學校)를 거쳐 협성(協成) · 경신(儆新) · 동덕(同德) · 배제(培材) · 중앙(中央) 등의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27년 계명구락부(啓明俱樂部)의 조선어사전 편찬위원이 되었고, 민족정신의 보전 · 계승을 위한 잡지 《한빛》을 편집, 발행하였다. 1929년 조선어연구회 · 조선어사전 편찬위원회의 집행위원, 1930년 한글맞춤법통일안의 제정위원이 되어 국어통일운동의 중진으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1931년 연희전문학교에서 강의를 맡았으며, 이해부터 4년간 여름마다 동아일보사 · 조선일보사 등에서 벌인 하기 한글강습회 강연차 지방을 순회하였다.

    1932년에는 조선어학회의 기관지 《한글》의 편집 및 발행 책임을 맡았으며, 1934년에는 진단학회(震檀學會)의 창립에 참여하였다. 이듬해 감리교신학교에서 강의를 맡았으며, 조선어표준어사정위원회의 사정위원이 되고, 1936년 조선어사전편찬위원회의 편찬전임 집필위원이 되었다. 1937년 수양동우회사건(修養同友會事件)에 관련되어 서대문 감옥에서 약 1년반 옥고를 치른 뒤, 1939년 대동출판사(大同出版祉)에 근무하였다. 1941년 기독신문사 주필로 일하면서 한글 보급과 우리말사전 편찬에 주력하다가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동지들과 함께 홍원경찰서에 붙잡혀 함흥형무소에서 복역중 옥사하였다.

    1947년 유고 《표준한글사전》(大同女化社, 1953)이 간행되었다. 이는 조선어학회에서 발표한 '한글맞춤법 통일안'과 사정된 '조선어표준말모음'을 기준삼아 처음으로 엮은 것이다. 그밖에 《성웅 이순신(聖雄 李舜臣)》(漢城圖書株式會社, 1931), 《도강록(渡江錄)》(朴趾源 作 抄譯), 《문예독본(文藝讀本)》(震光社, 1931 · 1932) 등의 저서가 있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단장(單章)이 추서되었다.

    출처:국어국문학자료사전, 이응백ㆍ김원경ㆍ김선풍 교수 감수, 1998, 한국사전연구사

     

    살아도 죽어도 조선을 위하여 …한평생을 조국에 바친 한글학자이자 독립운동가 한뫼 이윤재

    한글백일장은 대한민국 땅 어느 곳에서든 열리고 있지만, 김해의 한글백일장은 특별하다. 올해로 15회를 맞게 될 이 백일장은 김해문화원에서 한뫼 이윤재 선생을 기리며 열고 있는 행사이다. 한뫼 이윤재(1888. 12.24.~1943. 12.8.)는 한글을 지키기 위해 갖은 고초를 겪었던 한글학자이자 독립운동가였고, 민족의 얼을 지켜가는 후세대를 길렀던 교육자이며 민족사학자였다. 한평생을 조국에 바친 선생은 일제에 의해 참혹한 고문을 받고, 옥중에서 세상을 떠났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