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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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청군

    남명 조식

    역사인물

    • 위치
    • 남명기념관 :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남명로 311
    • 문의처
    • 055-973-9781
  • 주요내용

    그는 학문에 있어서 특히 경과 의를 기본으로 삼고 목적은 행동에 있고 그 행동은 의로서 아닌 것을 바꾸는 것이라고 말하여 추상 일렬 같은 기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러한 그의 학문적 태도는 바로 그의 문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고 그 학설의 요점은 68세때 선조왕에게 올린 무진봉사에 잘 나타난다.

    이른바 명선이란 궁리를 말함이요 성신이란 수신을 말함이다. 성품안에 먼저 이치가 갖추여져 있나니 인의예지가 곧 그 근원이요 만가지의 착함이 이로부터 나온다. 마음이란 이치가 모여드는 주인이요, 몸통이란 마음이 담겨진 그릇이다.

    그 이치를 캐어냄은 장차 쓰기에 의로 함이요 그 몸을 닦음은 장차 도를 행하려 함이다 라고 학문에 대한 견해와 목적을 분명히 밝히었다.그는 학문의 근본을 경의에 두고 그것을 실행하는 것을 강조하였으며 또 자신이 실천하여 당시 사람들이 허영만 팔아 국가재산을 축내는 벼슬에는 아예 접근조차 않았으며 몇차례의 국가의 부름을 받고 정치하는 도리만 설명하고는 번번이 돌아왔는데 속세를 등지고 조정에 항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때 사화로 계속 선비들이 수난만 당하는 형편이므로 벼슬에 임명되어도 신념대로 일 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남명선생은 초야에 묻혀 오직 처사로 불리워짐을 좋아하면서 학문연구와 교육에만 전념하였으며 특히 성리학이 이론적인 것보다는 실천면을 인간본위로 가르쳤기 때문에 그 영향은 매우 큰 것이어서 영남사람들이 대체로 낙선호의하는 것은 남명선생의 유풍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이며 이는 위대한 지도자의 인격적 감화가 국가의 교화보다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임진왜란을 당했을 때 그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 다투어 의병이 된 것은 투철한 교육이념이 반영된 것이라 할 것이다.산청은 이러한 지도이념의 발원지로서 한국역사상 중요한 위치에서 큰 의의를 갖고 있는 고장임을 자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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