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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획

[특집·기획]밀양 화재 참사 그 이후


 

무엇이 바뀌었나? 일회성 정책 벗어날까?

큰 일을 겪고나면 국민들은 궁금증으로 가득해진다. 대형 사건사고 못지않게 땜질식 처방에 더 큰 상처를 입어왔다. 이 같은 국민적 트라우마의 뿌리는 불신이다. 그런데 이 불신의 상처는 말로 치유할 수 없다. 샘플이 필요하다. 가시적 안정적 체계적 변화로 입증해야 한다. 국민들을 허술한 사회안전망에 또 당하게 할 수는 없다.

글·사진 최석철 편집장

 

박수를 칠 뻔했다.

지난 2월 3일 밀양문화체육관, 밀양 화재 사고 위령제에서 유족대표로 나온 김성환씨의 인사말은 우리 모두의 고통을 감싸안는 말로 가득했다.

희생자들과 못다 나눈 정을 얘기할 때도, 자원봉사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할 때도, 의료인의 사명을 다하다 숨진 의사와 간호사를 의사자로 지정해 달라 호소할 때도,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엄중히 간청드린다는 대정부 건의를 할 때도 필자는 박수를 치고 싶었다. 그러나 1천명에 가까운 참석자 가운데 어느 누구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 192명 사상자들의 희생을 담보로 절규하는 조사에 모두 손이 아닌 마음으로 ‘제발, 이번에는!’이라는 심정으로 응원하고 있는 듯했다. 이런 마음을 담아 우리 사회의 변화를 점검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낙연 국무총리의 책임 아래 국민대안전진단에 들어갔다. 지난 2월 초부터 이달 말까지 전국 29만여 곳의 안전시설물을 점검하고 있다. 경남도로 보면 1만5000여 곳에 해당한다. 세종병원 화재로 드러난 소방 및 소방시설 관련 법규를 현실에 맞게 수정하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입원 환자의 특성을 고려해 스프링클러의 설치 규정을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것도 포함됐다.

소방청도 달라진 대책을 내놓았다. 예고된 소방특별조사가 안전점검보다 허물을 덮어주는 면죄부라는 지적에 따라 ‘예고 없는 소방특별조사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함부로 비상구를 없앨 경우 영업장 폐쇄까지 내리는 규정도 만들겠다 한다. 정부 조직의 특성상 일정 시간이 걸리는 점은 국민들도 감안해 줘야 할 부분이다.

 

치권

여야 정치권은 세종화재 사고 이후 이른바 조문정치로 국민들의 원성을 샀다. 그저 ‘죄송합니다’만 하면 될 자리에서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에는 여야가 따로 없었다. 국민들의 분노를 자초한 정치권은 지난달 초 국회 임시회 첫날부터 몸을 낮췄다. 그동안 여야가 정쟁의 볼모로 잡았던 소방안전 관련법 3건을 본회의 첫날부터 이례적으로 일괄 처리했다. 이로써 공동 주택의 소방차 전용구역 설치가 의무화됐다. 소방차의 진입을 막거나 불법주차 하면 1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내야 한다. 다중이용업소 주변에는 주정차금지구역이 지정된다. 방염처리업자의 능력을 국가가 평가하는 소방시설공사업법도 통과됐다. 재석 의원 220명 전원 찬성이라는 진기록도 나왔다.

 


경남

지난달 26일 밀양 화재 첫날 도청보도팀이 언론사보다 먼저 도착했다. AI 비상근무에 밀양화재 특근까지 겹쳤지만 희생자들에 대한 미안함이 앞섰다. 출자출연기관 직원들까지 희생자돕기모금에 동참했고 도청 합동분향소를 찾아가 헌화하기도 했다.

경남도는 외형적인 변화도 갖췄다. 먼저 지난달 5일 도민안전제일위원회가 출범했다. 민간전문가 98명이 동참했다. 소방/생활/산업/보건/자연재난/교통 등 6개분야에서 전문가의 눈높이로 안전사각지대를 발굴하고 함께 대책을 찾아낼 계획이다.

경남119특수구조단도 가동했다. 소방헬기까지 동원해 골든타임 확보에 나선다. 지난해 구조헬기는 280여 회 출동했다.

제도적 보완을 약속한 부분도 있다. 국장급 재난정책관을 채용하고 경남발전연구원에 재난안전센터를 신설한다. 의령의 경남소방교육훈련장을 소방학교로 승격해 소방대원과 도민의 교육을 담당한다.

경남지역 의료 시설의 안전실태는 현재로서는 불안하다. 스프링클러가 없는 요양병원은 33곳, 불이 나면 소방서에 바로 통보되는 화재속보시설이 없는 곳 39곳. 경남도는 법적 하한선인 6월 말 이전에 시설 보강을 마칠 계획이다. 경남의 의료인력은 필수 인원의 60%대에 불과하다. 올해를 시작으로 인력보강 계획도 곧 나올 예정이다. 경남도는 정부정책에 맞춰 오는 3월 말까지 대국민안전진단 추진상황실을 운영한다.

 

긴급대피시설 모범사례 3곳

밀양 세종병원 화재 당시 환자 대피 과정의 어려움을 떠올리면서 경남공감 취재진은 경남 안팎에서 모아진 우수 사례들을 주목했다.

먼저 부산 북구 만덕동 아하브병원, 여기는 의무시설이 아닌 경사로를 신축병원에 가미했다. 침대째로 환자를 대피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침대에 묶인 환자도 지체없이 이송할 수 있다.

부산 동래구 온천동 사랑의 요양병원 외벽에 설치된 나선형 대피로도 주목을 끈다. 일종의 굽어진 미끄럼틀이다. 보조인력 없이도 일단 미끄러지기만 하면 발화지점이나 연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한 층만 내려오는 데 2초면 충분하다. 고층에서 내려올 경우 가속도를 감안해 1개층씩 끊어서 내려올 수 있다. 누군가 시작했다면 그냥 지나치지 말기를 바란다.

가까운 외국의 사례도 눈여겨볼 만하다. 일본에서는 건물의 특정지역 유리창에 역삼각형(한 변 20cm) 표지를 부착한다.

이곳은 강화유리가 아니어서 구조대원이 쉽게 진입할 수 있다는 표시이다. 건물 안에서도 안내표지판을 이용해 재난시 이곳으로 이용객들이 몰리게끔 유도하는 방식이다.

 


총체적 안전부실이 부른 인재

경남경찰청의 중간 수사발표 결과 밀양 세종병원 화재는 인재 쪽으로 기울어졌다. 건축, 소방, 의료 등 총체적 부실로 드러나고 있다. 불은 1층 응급실 내 탕비실 천장의 낡은 전기배선에서 합선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세종병원 화재 이후 타시도에서 발생한 병원 화재에서 방화문이 생사를 가른 필수 시설이었음이 확인됐다. 세종병원은 추가 공사 과정에서 방화문을 떼내 버렸다. 비상발전시설용으로 설치한 자가발전시설은 용량을 속인 그야말로 무용지물이었다.

당직의마저 불법으로 채용하는 등 의료인력 확보도 뒷전이었다. 밀양시와 시 보건소의 소극적인 행정도 지탄을 받았다.

 

의사자 지정은 어디까지?

유족대표까지 나서 의사자 지정을 간청했던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2월 말 현재 6600명이 동의했다. 민현식(59· 행복한병원 정형외과 과장)·김점자(여·49·세종병원 간호사)·김라희(여·37·세종병원 간호 조무사), 이들의 의로운 죽음을 기리는 국민여론을 반영해 밀양시와 밀양시의회 등은 정부에 의사자 지정을 건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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