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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이슈]경남 항일독립운동가 찾기 본격화

재야 사학자 추경화씨의 노력 결실, 1919년 기미만세둥이 186명 생존

1919년에 태어난 어르신들이 올해로 100세가 된다. 경남에만 186명. 이들의 부모 가운데 누군가는 만삭의 몸을 이끌고 독립만세운동의 현장에 있지 않았을까? 기미둥이들의 태교는 '대한독립만세가 아니었을까?'라는 상상을 해본다.

 


 


추경화 실장, 항일투사 150여명 훈포장 추서

필자의 상상을 현실로 보여주는 인물도 있다. 경남 진주문화원의 추경화(68) 향토사연구실장이 대표적이다. 지난 30여 년간 이 땅의 메아리로만 남아 있던 항일운동의 주역들을 찾아다녔다. 지금까지 900여명의 항일투사를 발굴해 150여명에게 훈·포장을 추서케 했다. 증조부의 항일 행적을 찾다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잊혀진 항일투사 유족들의 동병상련을 접하고 일생의 업으로 삼게 된 경우이다.

 

지난해 추 실장은 진주지역 3·1운동의 주역으로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고 한규상씨의 부인 박덕실 여사 등 5명을 독립유공자로 추천했다. 항일독립 관련 투옥기록을 찾아냈기에 가능했다. 그의 노력은 사람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1919년 3월 18일 진주에서 만세운동을 펼칠 때 그 신호탄은 ‘교회 종소리’였다. 그 땡그렁 소리에 5곳에서 일제히 만세에 나서면서 일본 경찰을 따돌렸다. 그날 이후 봉래동 진주교회 종탑에 대한 일경의 탄압도 거세졌다. 

 

2년을 버티던 교회는 결국 종탑을 산청의 한 교회로 피신시켰다. 이후 90년 가까이 분해된 채로 잊혀졌던 ‘역사의 종’을 찾아낸 이도 추 실장이다. 그 역사적 종탑은 현재 천안 고신대학원 박물관에 있고, 진주교회는 2012년 옛 모습을 복원했다.

 

정부, 영남권 독립유공자 발굴·항일역사편찬 지원

항일독립운동가를 찾고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은 국가적 과제이다. 그런데 역대 정부는 만주, 중국, 러시아 등 해외 중심으로 발굴단을 보냈다. 그 절절한 필요성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경남에서 한 개인의 노력만으로 900여명의 유공자들을 찾아냈다면 정부가 나설 경우 새롭게 밝혀질 역사인물의 수를 가늠하기 어렵다. 

 

지난 10년간 경남에서 독립유공자가 뜸한 이유에 대해 추 실장은 “유공자 선정의 열쇠를 쥔 공훈심사위원 가운데 지역인사가 없어서 생긴 일”이라고 주장한다. 약간의 과장이 있지만 흘려들을 얘기는 아니다.

 


 

정부도 조금 바뀌고 있다. 2017년 호남권에 이어 올해 영남권에서 국내 항일투사들의 흔적과 사료를 찾는다 한다. 지난해 연말 경남에 국비 1억9000만원이 시군별 항일독립운동사 편찬비로 책정됐다. 

 

사천시는 국비 지원금의 3배인 3000만원을 배정했다. 올해는 항일운동기념사업비 몫으로 경남에 국비 1억8000만원이 지원될 예정이다.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크게 두 줄기다. 멸공-승공-반공 등 대북관의 변천사, 항일-극일-승일-청일(淸日) 등으로 변해온 대일관의 변천사로 볼 수 있다. 

 

기미독립만세운동 1백년을 맞이한 지금, 분단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치열한 힘겨루기는 1백년 전 역사의 닮은꼴이 아닌가! 어제, 오늘, 내일처럼 끊임없는 시간의 변신을 지켜보며 우리는 오늘 어떤 함성을 발산해야 할지 자문해본다.

 

부모에게서 들은 그날의 함성을 전해줄 정도로 건강한 기미만세둥이는 몇 분이나 될까?라는 엉뚱한 궁금증이 생긴다.

 

 

글·사진 최석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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