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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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성군

    이금복

    역사인물

    • 위치
    • 문의처
    • 고성군청 문화관광과 : 055-670-2204
  • 주요내용

    이금복(李今福, 1912~2010) 선생은 경남 고성군 하일면 오방리에서 1912년 11월 8일 이석제(李奭濟)의 장녀로 태어났다. 결혼 후 부산 초장동 방직공장에 취직해‘여공과 더불어’라는 격문을 인쇄·배포하여 옥고를 치루었으며, 하일면 거주 당시 용산독서회를 조직하고 적색노동조합에 가입해 농촌학생들에게 항일의식을 고취하는 등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고성의 유일한 여성독립지사이시다.

     

    선생은 1932년경 부산 초장동 방직공장에 취업했으나 일제에 의한 노동착취가 심해 1934년 2월 초장동 자택에서 이춘근, 김병환, 정충조 등과 더불어 공장연구회를 조직해‘여공과 더불어’라는 제목의 격문을 인쇄·배포하고 노동준비위원회를 결성해 활동하던 중 일경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고 기소유예처분으로 석방된 후 대구지역에서 일어난 공장파업에 동조하는 격문을 인쇄하여 배포한 일로 일경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고향으로 피신하였다.

    1938년경 고향인 고성군 하일면으로 피신하여 용산독서회를 조직하고 적색노동조합에 가입해 농촌학생들에게 항일의식을 심어주다 또다시 체포됐다. 이때 150여 명이 체포됐지만 여성은 이금복 선생뿐이었으며, 이 독립운동으로 선생은 1939년 8월 30일 부산지법 진주지청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집행유예 3년을 받고 그해 9월 2일 석방됐다.

    1942년 5월에는 서울 돈암동에서 조국의 독립과 사회주의 실현을 목적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옥고를 치르던 중 탈옥한 정태욱에게 여비와 의복 등 편의를 제공하고 독립에 대한 대화를 하다가 체포돼 옥고를 치루기도 했다.

    선생의 이러한 공훈을 인정하여 2008년 8월 광복절에 정부에서는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선생은 노환으로 진주시 소재 요양원에서 요양을 하고 있던 중 2010년 4월 25일 향년 99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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