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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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밀양시

    강덕수

    역사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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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요내용

    1919년 당시 그는 밀양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15세의 소년으로, 4월 1일 동교 졸업생인 윤차암(尹且岩)·윤수선(尹秀善)·김성선(金性善)·박소수(朴小守) 등과 함께 밀양면(密陽面, 현재 밀양시) 내일동(內一洞) 영남루(嶺南樓) 뒷산으로 놀러갔다.


    이 때 부산공립상업학교에 진학한 윤수선이 부산에서는 학생들이 조선의 독립을 위해 만세를 고창하였다고 말하자, 그는 친구들에게 밀양에서도 학생들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을 하자고 제의하였다. 그의 발의에 동의하여 그들은 2일 밤 밀양공립보통학교 생도들을 규합하여 만세시위를 실행할 것을 결의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동교 졸업생인 정선호(鄭善浩)의 집에 들러 그에게도 만세시위의 실행 계획을 말하고 동의를 얻어 6인이 함께 주도하기로 하였다.

     

    4월 2일 저녁 식사 후 그와 동지들은 생도들에게 학교 교정으로 모일 것을 권유하였다. 20∼30명의 생도들이 모이자 그들은 생도들을 학교 화장실 부근에 대기시켰다가 대오를 이루어 행진을 시작하였다. 이 때 박차용은 나팔을 불며 생도들의 선두에 섰고, 그와 동지들도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학교 서쪽 무안가도(武安街道)를 행진하고 우측으로 돌아 북문(北門)까지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날의 만세시위로 일경에 체포된 그는 1개월여의 옥고를 치르던 중 1919년 5월 5일 부산지방법원 밀양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4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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