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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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양군

    문태서

    역사인물

    • 위치
    • 문태서 생가 : 경남 함양군 서상면 상남리 1026-1
    • 문의처
    • 055-960-5164
  • 주요내용

    문태서[1880~1913]는 경상남도 안의군 서상면에서 출생하였다. 1907년(순종 1) 제3차 한일 협약이 체결된 후 한국군이 강제 해산되자 의병을 일으키기 위하여 덕유산으로 들어갔다. 먼저 덕유산 원통사 부근의 포수 10여 명으로부터 호응을 받아냈는데, 이어서 박춘실, 박수문, 전성보 등의 의병이 합세하여 본격적인 의병 활동을 전개할 수 있었다. 이에 문태서는 의병대의 이름을 ‘호남 의병단’이라 칭하고 소속 의병들의 추대를 받아 총참모 지휘장이 되었다.


    1909년(순종 3) 호남 의병단의 활동 지역은 점차 확산되어, 대덕산을 거쳐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방면으로 이동하면서 유격 활동을 이어 나갔다. 4월에는 의병 40여 명이 전라북도 용담군 이동면 장전리[현 진안군 지역]에 있는 일본군 수비대를 습격하였다. 호남 의병단이 계속 전과를 올리자 1909년 4월 무주 군민들이 문태서의 항일 구국 전공을 기리기 위하여 공덕비를 세웠으나 일본 경찰에 의해 철거되었다.


    국내 정세가 더욱 불리해지고 결국 1910년 8월 나라가 일본에 병합되자 문태서는 지하 운동을 하기로 결심하고 호남 의병단을 소부대로 분산시켰다. 지역을 확대하여 옥천, 금산, 보은 등지에서 유격전을 전개하던 문태서는 1912년 8월 17일 덕유산 아래 매부의 집으로 잠시 내려가 매부의 지인 조기래와 함께 담화하던 중 일본군에 노출되어 포위·체포되었다. 경상남도 진주로 압송되었다가 대구 감옥으로 이송되었고, 다시 서울로 옮겨졌으나 시종 기개를 굽히지 않다가 1913년 2월 4일 옥중에서 자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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