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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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양군

    박지원

    역사인물

    • 위치
    • 역사인물공원 : 경남 함양군 함양읍 대덕리 251-4
    • 문의처
    • 문화관광과 문화재담당 : 055-960-4540
  • 주요내용

    조선조 실학의 대가인 선생은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연암(燕巖)이고 자는 미중(美仲)이며 본관은 반남이다. 
    세살때 아버지를 여의고 할아버지에게서 배우고 자랐으며 결혼후에는 처삼촌에게 학문을 배우면서 자신의 입지를 굳혀 나갔다. 

    30세가 되면서 실학자 홍대용을 만나 자연과학에 눈을 돌려 천문학을 비롯한 지동설을 터득하는 한편 서양의 신학문을 배우면서 18세기말 문장가요 북학 실학자의 중심인물로 개혁사상가로서 과거나 벼슬보다 경제문제와 서양의 과학에 심취했다. 

    1780년 청나라에 머무르는 4년간의 일기를 기록한 「열하일기」는 귀국후 우리나라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관직생활은 의금부도사, 한성부판관을 거치면서 지방관리로 발탁 안의현감으로 부임하여 5년동안 실학사상을 백성을 다스리는데 활용하여 선정을 베풀었다. 

    특히 안의 현감으로 있을시 전국의 유명한 문인, 명사들이 이 고장을 찾았으며 함양지방의 선현들이 선생이 주장한 학설이나 예의 범절과 풍습을 실천하는데 앞장 섰으며 몸소 견문한 지식이나 터득한한 기술을 장인들과 백성들에게 전수하였으며 제방을 쌓고 굶는 사람을 구휼하는등 올바른 치정을 하였는데 

    이 시기에 전국에서 처음으로 물레방아를 만들어서 지금까지 디딜방아를 사용하여 곡식을 찧던 것을 물레방아를 이용하게 됨으로써 백성들의 사회생활과 생산증대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오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유명한 허생전, 양반전, 열녀함양박씨전 등을 비롯한 12편의 한문소설과 연암집, 과농소초등의 백성들의 사회생활과 밀접한 저술을 많이 남겼으며 사대부의 고루한 사상과 허례의식을 크게 지적하였다. 

    학자로서 저술가로서 또한 행정가로서 많은 업적을 남긴 가운데 특히 충,효,예와 위민후생(爲民厚生)에 뜻을 두었던 선생의 큰 자취를 더듬어 진단학회, 국어국문학회, 한국사연구회, 고전문학연구회, 한문학연구회, 다산연구회 및 함양지역 유지들이 성금을 모아 1986년 안의초등학교 교정에 사적비를 세워 재임기간 동안의 빛나는 업적을 기리고 있다 

    함양군에서는 2001년 상림의 역사인물공원에 선생의 흉상을 건립하여 그 뜻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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