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부성전투

동래부성전투

동래성전투는 1592년 4월 15일 일본군 선봉부대와 조선군 수비대 사이에서 일어난 전투로, 4월 14일 오전 부산진성을 함락시킨 적군은 동래로 진출하였다.

동래는 부산진과 가까운 거리였고, 또 부산의 행정 관할은 동래부에 있었다. 당시 동래부사는 문관 출신의 송상현(宋象賢)이었다. 송상현의 수성 계획은 일차적으로는 지역의 병권을 가지고 있던 경상좌병사의 군과 인근 군현의 군사력을 이용하여 싸울 예정이었다. 당시 경상좌도 군사책임관이었던 경상좌도 병사는 이각(李珏)이었다. 이각은 울산에서 동래성을 지원하려 왔다가 일본군의 군세가 막강함을 보고서는 뒤에서 계속 지원하겠다고 하고서는 성문을 열고 도망하였다.

그리고 직접 부사의 명령계통을 아니었지만, 부산 해안 방어를 책임지고 있던 경상좌도 수군절도사영의 수사는 박홍(朴泓)이었다. 그는 부산포에 적이 닥치자 성을 버리고 달아났다.
그러나 양산군수 조영규는 동래부사 송상현에게 달려가 나라를 위해 죽을 각오로 싸우기로 하고 끝까지 항전하다가 송상현 부사와 함께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일본군은 이미 부산진성 전투에서 조선민의 굳센 항전을 경험하였기 때문에 대군을 동원하여 일시에 동래성을 포위, 공략했으므로 격전이 벌어질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동래성 전투는 15일의 경우 시간적으로 보면 부산진성 전투보다 전투시간이 짧았다. 대격전은 우리측에 많은 희생자를 냈으며 끝내 동래성은 함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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