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포해전

옥포해전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옥포(玉浦:경상남도 장승포시 옥포동) 앞바다에서 이순신(李舜臣)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이 왜의 함대를 무찌른 해전이다.

부산진과 동래성을 점령한 왜적이 계속 북상하자, 당황하여 남해현 앞바다에 피신해 있던 경상우수사 원균(元均)은 율포만호(栗浦萬戶) 이영남(李英男)을 이순신에게 보내어 적의 상황을 알리고 구원을 요청하였다.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휘하의 장수와 의논 끝에 출전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조정에 알리는 한편, 원균에게 양도의 수군이 집결할 장소를 약속하였다.
조정의 출전명령을 받자 본영(本營:지금의 여수) 앞바다에 집결한 휘하장병과 전선을 점검한 뒤 전대(戰隊)를 편성하니, 전선(戰船) 24척, 협선(挾船) 15척, 포작선(鮑作船) 46척, 도합 85척이었다.
5월 4일 본영을 출발하여 소비포(所非浦:고성군 하일면 춘암리)에서 하룻밤을 자고 당포 앞바다에 이르러 원균의 전선 4척, 협선 2척과 합세하여 송미포(松未浦:거제군 동부면)에서 작전을 계획하였다.
이곳에서 하룻밤을 잔 뒤 5월 7일 전함대가 동시에 출항하여 옥포근해에 이르자 척후장(斥候將)인 사도첨사(蛇渡僉使) 김완(金浣)으로부터 적을 발견한 신호를 받았다.
옥포해전 옥포해전-해군사관학교

이때 도도(藤堂高虎) 지휘하의 왜선 30여척은 홍백기를 달고 해안에 흩어져 있고, 왜적들은 포구로 들어가 분탕하고 있다가 아군의 기습공격에 당황하여 6척을 앞세워 해안을 따라 도주하기 시작하였다. 아군은 이를 포위하고 맹렬하게 포격을 가하여 왜선 26척을 격파하고 왜적에게 포로가 되었던 3명을 구출하여 임진왜란중 해전에서의 첫 승리를 거두었다.

이날 전투에서 탈출에 성공한 왜선은 몇 척에 불과하였으며, 미처 승선하지 못한 왜적은 육지로 달아났다. 아군은 달아나는 왜적을 추격하여 영등포(永登浦:거제군 장목면)를 거쳐 합포(合浦:마산시)에서 5척, 다음날 적진포(赤珍浦:통영군 광도면)에서 11척을 각각 분파하고 9일 본영으로 돌아왔다. 이순신은 이 전공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의 관계를 받았다.